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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 - 이영규> 中企지원책 ‘희망 사다리’ 되길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끝없이 달리는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막강한 자금 운용력을 가진 이들이 모인 머리칸과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하고 업무에 매진하는 이들이 모인 허리칸, 재정이 넉넉하진 않지만 열정과 패기로 가득 찬 이들이 모인 꼬리칸으로 구성돼 있다. 각 칸의 이음새에는 사다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다른 칸으로의 이동과 자금순환이 원활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꼬리칸과 허리칸 사람은 좀처럼 머리칸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다. 견고해 보이는 사다리에는 열차 관리자가 미처 보지 못한 틈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 영화 ‘설국열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중소ㆍ중견기업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다양한 중소기업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경영자가 체감하는 정책의 실효성은 무척 낮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대기업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정부는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음에도 기업가가 외치는 애로사항 1순위는 언제나 ‘자금조달의 어려움’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너도 나도 중기 지원자금을 내놓는다고 외치지만 과연 수월하게 자금을 수혜받은 기업이 몇 곳이나 될지 궁금하다. 중소기업은 성장모멘텀 확보를 위해 사업자금을 대출받거나 자금지원을 신청할 때, 기업 스스로 신용도를 입증해 보여야 할 뿐만 아니라 지원기관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제출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필자가 몸담은 웰크론그룹의 2개 계열사가 금융권이 인정한 ‘히든챔피언 기업’으로 선정됐을 정도지만 이 입증과정은 여전히 어렵고도 까다롭다. 하물며 영세 중소업체나 갓 창업한 벤처기업의 어려움은 얼마나 클 것인지 짐작이 간다.

금융지원이 주로 운전자금 분야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중기의 경우 자금난 부족을 겪는 일이 허다하다 보니 기술개발을 위한 시설확충이나 설비구축,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마케팅 활동에 자금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일부 대기업의 제품이 해외수출제품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기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마케팅 활동과 제품의 판로확보가 시급하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보다 중소기업으로 쇠퇴한 경우가 약 4배 이상이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의 대부분은 과감한 사업조정이나 사업전환을 추진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기업이 이 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경제적ㆍ제도적 지원이 부족해 부도가 나거나 중소기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은 없는지도 배려해야 한다. 단순히 중소기업에 주던 혜택을 중견기업에까지 확대하는 것은 단기적 효과에 그칠 뿐이다.

기업인으로서 ‘중소ㆍ중견기업 성장 희망사다리’는 필자가 가장 기대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아직 체감도는 낮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더 많은 중소ㆍ중견기업이 정책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튼튼하고 견고한 희망의 사다리가 짜여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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