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생계를 위해 닭 장사를 하던 소년 유제프는 어느날 바람난 부인집에 찾아가 현장 마케팅을 한다. 부인은 닭 값 대신 유제프에게 자기 속살을 보이며 몸을 들이민다. 바람난 여인의 육탄 공세에 소년이 당황해 하는 사이 갑자기 그녀 남편의 인기척이 들리고, 유제프는 이 부인에 의해 옷장으로 떠밀린다. 옷장 안에는 이미 벌거벗은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초긴장 상태의 아저씨와 닭 파는 소년. 새로운 흥정이 붙는다.
“이 닭 20리라예요. 사세요. 안 그러면 소리치겠어요”
“그래 알았다. 옜다, 20리라”
“아저씨, 방금 산 말라빠진 닭, 5리라로 제게 파시겠어요? 5리라 아니면 소리 지를 거예요”
“알았다. 알았다.”
“아저씨, 이 닭 다시 20리라에 사세요. 아니면 소리 지를 거예요”
여윈 닭 한 마리를 두고 거래는 수차례 반복됐고, 한 번 오갈 때 마다 유제프는 15리라씩 벌었다. 바람난 여인의 내연남은 콩밥 대신 천국을 얻는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헤르만헤세 상(賞)을 받은 바 있는 독일작가 라픽 사미가 다마스쿠스에 머물던 시절의 얘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꾸민 ‘파리(fly) 젖 짜는 사람’ 중 한 토막이다. 이 세미픽션에는 군에 가지 않으려 귀머거리 행세를 하다가 걸려 도피생활을 하던중 징병관이 직업을 물으면 일부러 바보 취급 받으려고 ‘파리 젖 짜는 사람인데요’라는 대답을 준비했다는 ‘살림’씨 얘기도, 정부 비밀경찰이 민간 사찰을 하다 도리어 감옥살이를 하는 얘기, 내용이 맞든 말든 답안지만 길게 쓰면 높은 점수를 주는 빗나간 교사 이야기 등도 들어있다.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이다. 수십년 정권 세습, 측근 대물림으로 점철된 시리아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가 풍자 속에 숨어있다.
다마스쿠스는 현대사가 암울할 뿐, 고대, 중세사는 찬란했다. 지금부터 4500년전 건설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이 곳은 비잔틴 제국의 중심도시 였으며,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군의 전략기지로서 엑스칼리버에 견줄만한 ‘다마스쿠스 검(劍)’이 생산된 본고향이었다. 중세 동서무역의 중개지였고, 20세기초 아랍왕국의 수도였을 정도로 문화와 문물이 넘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다마스쿠스는 평화와 휴머니즘의 대명사로도 꼽힌다. 1099년 십자군은 수많은 피를 뿌리며 예루살렘을 점령했지만, 다마스쿠스에서 자란 아랍제국 술탄 살라딘(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은 1187년 예루살렘을 방어하던 기독교인과의 협상과 담판 끝에 무혈 입성한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살라딘의 동상은 ‘전쟁 중에 펼쳤던 휴머니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지금 다마스쿠스에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아동과 부녀자 등 수만명이 독재 권력에 학살당하자 국제사회가 군사개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란도 제재에 동참하는 분위기이다.
‘파리 젖 짜는 사람’에는 상도의를 저버리고 장난스런 내기를 걸어 물건을 팔다 결국 패가망신하는 상인 얘기도 나온다. ‘탐욕의 장난질’로 다마스쿠스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 Assad)가 콩밥 먹을 일도 멀지 않은 듯 하다. 시리아 국민들이 ‘파리(fly)한테서 젖 짜내야 하는 일’도 없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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