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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다마스쿠스
생계 때문에 닭장사를 하는 소년 슈제프는 어느날 바람난 부인 집을 방문해 흥정을 하지만, 부인은 닭값 대신 몸을 들이민다. 육탄공세에 당황하는 사이 남편의 인기척이 들리고, 유제프는 이 부인에 의해 옷장 안으로 떠밀린다. 이미 옷장 안에는 벌거벗은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닭을 두고 둘 간 새로운 흥정이 붙는다. 닭 한 마리를 20리라의 비싼 값에 사지 않으면 소리치겠다고 하자 남자는 순순히 응하고, 다시 이 닭을 소년이 5리라에 사서 20리라에 되판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소년은 닭이 오갈 때마다 15리라씩 벌어들인다.

독일 작가 라픽 사미가 다마스쿠스에 머물던 시절의 얘기를 꾸민 ‘파리(fly) 젖 짜는 사람’ 중 한토막이다. 내연남은 콩밥 대신 해방을 얻는 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세미 픽션에는 병역기피자, 빗나간 교육자, 민간사찰하는 비밀경찰 얘기도 있다.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다. 기나긴 독재정권의 폐해가 풍자 속에 숨어있다.

다마스쿠스의 고대ㆍ중세사는 찬란했다. 지금부터 4500년 전 건설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이곳은 비잔틴제국의 중심도시, 중세 동서무역의 중개지, 20세기 초 아랍왕국의 수도였을 정도로 문화와 문물이 넘쳤다.

다마스쿠스에서 성장기를 보낸 슐탄 살라딘은 12세기 피흘리며 빼앗긴 예루살렘을 협상 끝에 무혈 탈환한다. 다마스쿠스의 살라딘 동상은 ‘전쟁 속 휴머니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부녀자ㆍ아동 등 수만명이 독재자에게 학살당한 이곳엔 지금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국제사회의 군사 개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다마스쿠스의 명예에 먹칠한 독재자 아사드가 콩밥 먹을 일이 머지않은 듯하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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