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이 논란 끝에 감사원을 떠났다. “헌법이 보장한 임기 동안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라는 그의 말이 임기를 1년7개월이나 남기고 감사원을 떠나는 이임사에 적합한지 의문이 든다.
감사원 안팎의 ‘역류’와 ‘외풍’에 직무상 독립성을 지키는 데 역부족을 느꼈다는 것이 그의 사퇴의 변이다. 사실 새 정부 출범 초, 4년 임기의 반이나 남은 양 원장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겠다고 흔든 것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유임 전화를 받았다”며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 것 역시 양 원장 본인이었다.
외풍은 인사 문제와 감사 방향을 둘러싼 청와대 및 정치권과의 갈등을, 역류란 4대강 사업 감사 등에서 뜻을 달리한 일부 직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 정권과 현 정권 사이에 낀 상황도 곤란한 판국에 내부 반발도 다독여야 했으니 외롭고 서글펐을 수 있다.
그러나 고충이 자신에게 부여된 헌법적 책무를 ‘개인적 결단’으로 벗어버리는 이유가 될 순 없다.
감사원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수장으로서 막아주며 견디는 것이 양 원장에게 부여된 헌법적 의무였다. 스스로도 헌법학자 출신이기에 더욱 그 소임을 다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말과 달리 그는 자진사퇴를 통해 자신의 소임을 회피해 버렸다.
미국의 연방 대법관은 정년이 없는 종신직이다. 9명의 대법관들은 고령으로 업무가 버겁더라도 자리를 지키려 한다.
죽을 때까지 외풍에 흔들리지 말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라는 헌법의 명령을 지키기 위한 인내요, 용기다. 양 원장은 그런 용기를 가졌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길 바란다.
새로운 감사원장 임명을 두고 또 다른 정치적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이번에는 말로만 감사원의 독립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정치적 압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감사원장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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