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들 간 28일 오찬 간담회는 그 의미가 상당하다. 우선 대기업 회장들이 대통령과 공식 회동을 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미국이나 중국 방문 때 동행하거나 무역투자진흥회의 참석 등을 통해 만나 오기는 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10대 그룹’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청와대와 재계 사이에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치를 두고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이번 회동이 그 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됐다면 그것만 해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실제 이날 오간 대화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한결 유연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정부의 역할은 기업인이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거나, “경제민주화가 기업을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발언 등이 그렇다. 최근 백지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하고 많은 의견을 들어 추진할 것”이라며 수위를 한껏 낮추었다. 물론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속내를 감추지는 않았지만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를 지켜 본 대기업 총수들도 아마 그 진정성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더 자주 만나 경제 활성화와 대기업의 역할, 그리고 핵심 국가적 과제인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해 진지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 좋든 싫든 우리 경제는 대기업 의존형 구조로 고착돼 있다. 상장사 기준으로 총 매출의 54%를 10대 그룹이 차지할 정도다. 순이익은 무려 80% 선이다. 기업이 내는 세금의 86%를 상위 1% 기업이 책임지고 있으니 대기업은 우리 경제 그 차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표현처럼 기업인은 국정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 대통령과 재계 대표가 자주 만나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재계도 더 적극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안팎의 상황이 쉽지 않지만 그럴수록 투자를 더 확대하는 공격적 경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려야 일자리도 생기고 경기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몸을 사리고 있다. 30대 그룹이 밝힌 올해 투자 계획은 154조원이지만 상반기 실제 투자는 61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날 참석했던 대기업 총수들은 한결같이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립서비스가 아니길 바라며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