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선생님 남성으로서 매력있죠. 다정다감한 것보다 강직함, 남성성 그런 거예요.”
30살의 나이 차가 나는 김동리의 아내 서영은의 속이 궁금했다. 문학의 스승, 인생의 선배로서가 아닌 부부로서 김동리라는 남자는 어땠을까. 24살 환한 나이에 김동리를 만나 이제 노년에 이른 서영은은 주저없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젊은 아내는 늙은 신랑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입을 달싹거렸다. 김동리는 “서방님”이라고 부르라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김동리의 허리를 부끄럽게 껴안으면, 김동리는 웃으며 “하고 싶나?”하면서도 제 일을 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김동리가 한국문학사에 남긴 자리는 크고 선명해 문학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자리를 피해갈 수 없다.
뜨겁고 강렬한 문체로 민족적 정서를 화인처럼 새겨낸 그의 문학은 여전히 우뚝하다. 문학이 좌우대립으로 갈릴 때 우익의 수장으로 꼽히며 그를 잡으려 혈안이 돼 있을 때도 문학의 본령에 대한 그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문인이 그와의 인연으로, 그에 맞섬으로써 그를 넘어갔지만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의 집 저녁식탁에는 늘 손님이 북적였다. 그는 후배, 제자가 찾아오는 걸 반겼고 대접했다. 그럴 때면 신이 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문학강의를 이어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행사가 줄을 잇는다. ‘무녀도’ ‘등신불’ 등 그의 8편의 작품을 김선두 등 내로라하는 화가가 그림으로 담아낸 전시회가 서울도서관에서 열린다. 11월 그의 생일 무렵엔 음악회도 마련된다.
기독교와 유교, 불교, 샤머니즘이 함께 숨을 쉰 그의 삶과 문학은 넓고 깊다. 김동리는 생전에 매일 저녁 잠잠히 기도했다. 그가 무엇을 빌었는지 사뭇 궁금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