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개원된 정기국회가 여야 대치로 연일 공회전을 일삼고 있다. 모종의 타협을 이끌어 내기 위한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정원 개혁 등을 둘러싸고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 정치가 온전하게 복원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추석 연휴 이후까지 ‘놀고먹는 국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100일 회기 중 20일을 까먹는 셈이다.
정기 국회가 정상 가동돼도 일정이 빡빡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정치권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교섭단체 대표연설, 대정부 질문, 국정감사, 2014년도 예산안을 비롯한 각종 법안 심사와 처리 등 국회 본업이 다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정기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다는 우려는 혼란에 혼란을 거듭한 지난 8월 임시국회에서부터 이미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새해 예산안을 제대로 심사하려면 지난달에 전년도 결산 심사만이라도 끝냈어야 했다.
국정원의 대선 댓글 논란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여부 등 소모적인 논쟁과 실속 없는 국정조사로 서너 달을 허비하더니,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회담 형식을 놓고 티격태격하는 데만 골몰한 결과다. 정치 실종으로 정기 국회가 헛도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진도가 나가야 할 국정원 개혁마저도 ‘이석기 내란음모혐의’ 사태에 묻히고 말았다.
여야 갈등은 정치적 도의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주말에 더 증폭됐다. 천막농성 39일째인 8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주요 당직자들은 4ㆍ19 민주묘역을 찾아 작심하고 새누리당을 향해 거친 언사를 내놓았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의 뿌리는 독재정권과 군사 쿠데타에 있다고 포문을 열었고, 새누리당은 야당이 종북 세력에 출구를 열어주고 있다며 맞받아쳤다. 여권은 종북몰이 공세로, 야권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더 각을 세우고 있다. 정치시계가 수십년 거꾸로 돌아간 것이나 다르지 않다.
꼬인 정국을 풀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민주당이 의사일정 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단독 국회를 열겠다는 새누리당도, 이런 자세는 국민을 향한 기만이고 국회파행을 선언하는 행위라며 장외투쟁을 고집하는 민주당도 국민이 보기엔 명분 없기로는 피장파장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귀국일인 11일 전에는 뭔가 이뤄내길 바라는 일반의 정서를 뿌리쳐선 곤란하다. 청와대와 여야 모두 서로를 인정하는 기본으로 돌아가 국회공전부터 막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