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이면서 간디였던 인물. 간디였지만 총을 들었던 혁명가. 혁명가이지만 국민들에게 ‘아저씨’로 존경받았던 지도자 .‘호 아저씨’ 호찌민이다. 이름을 50번 넘게 바꿨는데 호찌민 역시 가명 중 하나다.
호찌민은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프랑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프랑스 장교를 만난 그는 “우리가 당신네 한 사람을 죽이는 동안 당신들은 열 사람을 죽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땅에서 먼저 없어지는 것은 당신들이 될 것이요”라고 말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로 호찌민의 말처럼 80년간 통치했던 ‘당신들’은 사라졌다.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내 시신은 화장해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된 묘소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배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박정희는 근대화, 호찌민은 민족해방을 내걸었고 적이기도 했지만, 둘은 닮은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jlj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