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신화를 연출했던 강덕수 STX 그룹 회장이 결국 사퇴했다. 그는 쌍용양회 사원으로 입사해 재무책임자로 일하던 쌍용중공업을 인수, STX 그룹을 출범시켜 재계 13위까지 키워낸 입지전적 경영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신화는 없었다. STX 그룹 채권단이 강 회장을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강 회장도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채권단 의견을 받아들였다. 주력 계열사인 STX조선해양 대표 사퇴는 그룹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의미다.
하지만 강 회장의 사퇴가 최선의 판단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그룹을 위기상황으로 몰고 간 책임은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인 강 회장에게 있다. 그 위치라면 누구든 그룹 경영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세계 경기 침체, 그로 인한 업황 부진 등 외부 경영환경 변화까지 모두 강 회장 책임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문제의 근원이 된 중국 다롄(大連)조선소 투자는 국내 증설이 여의치 않았던 당시로선 최선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재기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이런 기업경영 풍토에서 누가 위기에 적극적인 투자와 공격 경영으로 활로를 열어갈 모험과 도전을 하겠는가.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 현실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
더욱이 강 회장은 난파 위기에 빠진 쌍용중공업을 구한 것은 물론 이 회사를 세계 4위 조선업체로 탈바꿈시켜 놓은 바 있다. 그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하우를 살려 볼 기회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그룹을 직접 일군 당사자로 누구보다 속속들이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꿩 잡는 게 결국 매가 아닌가. 채권단도, 정부도, 또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룹의 정상화다. 그렇다면 강 회장만큼 적임자도 없다. 이는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도 인정한 바 아닌가.
최고경영자의 위치라야만 경영정상화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대표이사직을 물러났더라도 강 회장은 스스로 밝힌 것처럼 ‘백의종군’하며 그룹 정상화에 기여하기 바란다. 채권단도 그의 경험을 어떤 형태로든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게 채권을 효과적으로 회수하는 첩경이다. 강덕수 신화 1막은 끝났지만 2막을 다시 열어야 한다. 강 회장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제2, 제3의 강덕수 신화를 꿈꾸는 청년 창업자들이 넘치는 사회적 토양을 조성해야 한다. 신화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