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처럼 부는 은퇴형 귀농·귀촌
실제, 현실은 ‘버텨봤자 2년’…
대저택·여유로운 수익은 꿈일뿐
현실직시…여유로운 은퇴 2막을
“놀러오세요. 그야말로 천국입니다. 이제야 사는 맛을 제대로 느끼는 듯합니다. 산기슭 밭에는 산마늘을 재배하려 합니다. 우리 부부는 현지 체험실습까지 마쳤습니다.”
천상의 화원으로 일컬어지는 강원도 백두대간의 곰배령 근처에 은퇴 둥지를 튼 고급공무원 출신의 한 지인 이야기다. 새장에 갇힌 수십년 세월을 벗어나 전원주택을 짓고 1500평 규모의 널따란 텃밭도 마련했으니 그 설렘이 오죽하겠는가.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지역에 은퇴형 귀촌의 꿈을 펼쳤으니 ‘월튼네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해발 700m 위치에 실용적 디자인으로 지어진 목재주택은 산세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었다. 깊은 산중이면서도 곰배령을 찾는 순수한(?) 산객으로 적당히 도시맛을 느낄 수 있고, 동해 낙산바다가 40분 거리의 코앞에 위치해 자연의 최대 호사를 누리기에 충분했다. 부부의 이런 삶을 보는 순간, 용기있는 선택과 아름다운 포기에 찬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환상적 기쁨과 삶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걸려온 전화는 실망 그 자체였다. 동네 이장을 비롯한 토박이의 횡포는 되레 도시의 삶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후회감을 줬다. 도시보다 더한 기만과 협잡ㆍ사기 등이 횡행했고, 외지인을 대하는 지역 배타성까지 어우러져 절망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동네사람과 크게 다투고 산마늘 농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깨진 항아리를 때우는 심정으로 다시 노력해보려 했지만 토지 매입 후 10년을 공들인 효험도 없이 마음은 무정하게 일탈하고 있었다.
1970년대 방송돼 386세대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월튼네 사람들’ ‘초원의 집’ 등 이상적인 전원드라마는 꿈에 불과할 뿐 현실은 이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같은 사례는 요즘 열풍처럼 불고 있는 은퇴형 귀농귀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열한 도시에서의 경쟁을 벗어나 흙냄새 나는 피안의 세계에 거주하려는 욕구가 날로 커지면서 귀농귀촌 바람이 거세다. 자연회귀 본능을 순수히 받아들이려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캠핑 열풍도 자연을 찾아 떠나려는 현대인의 자연회귀 속성이다.
장 자크 루소는 타락한 문명이 행복을 파괴한 만큼 인위적 사회제도로부터 벗어나 자연회귀로 완전한 독립을 유지할 때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문명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복은 자연속에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2001년 880명 수준에 그쳤던 귀농귀촌 인구가 2011년 무려 1만530가구, 지난해는 2만6200가구로 급증했다. 연 3만명 선도 시간문제다.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베이비부머의 본격 은퇴를 비롯해 평생직장 개념이 깨진 불안한 고용시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100세 수명으로 이어지는 호모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의 도래 역시 자연으로의 탈출을 가속화할 것이다.
문제는 귀농귀촌의 실패도 아울러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프라 미비 탓도 있으나 이주 수요층의 오산에 의한 잘못된 선택이 더 실패를 양산하고 있다. 은퇴 2막을 준비하면서 그림같은 거대한 집과 토지 소유를 꿈꾸고, 생산적 농사일을 생각한다면 이는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골에서는 ‘버텨봤자 2년’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도시 외지인이 농촌에 내려와 생활가능연수가 2년이라는 얘기다. 재차 그 집과 땅이 매물로 나와 뜨내기 도시민에게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도시를 떠나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려면 소박한 농가주택 전세에 채마밭 수십평이면 족하다. 연수입을 계산한 농사는 짐이 될 뿐이다. 전원드라마는 스튜디오 촬영일 뿐 현지 로케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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