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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全씨와 국민정서법
갈 길이 아직 한참 남았다.이것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기에는 그 업보가 너무 무겁다. 무소불위의 7년 권세,5공 청산은 영원한 진행형이어야 마땅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납 추징금을 몽땅 내겠다고 한다. 대법원이 비자금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지 16년 만의 일이다. 검찰 수사가 예사롭지 않자 역사와 국민 앞에 마지못해 백기를 든 모습에서 새삼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이 묻어난다.

그의 큰 아들 재국 씨는 가족 대표로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완납하겠다며 허리를 꺾어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족회의에서 큰소리까지 오갔다는 말까지 들린다.

세간에는 전 씨의 숨겨둔 재산이 1조원대에 달한다는 소문 아닌 소문이 나돈다. 본인이 당시 검찰에 밝힌 비자금은 수천억원대였다. 이른바 통치자금이란 것을 빼놓고 그 정도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돈을 땅에 묻어만 뒀다고 치자. 장담하건대 몇 배는 뛰었을 것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들썩인 부동산이 그 증거다.

전 씨가 통장 잔고로 29만원밖에 없다고 잡아 뗀 그 즈음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에 처했고, 온 국민들은 나라부터 살려놓고 보자며 금모으기 운동으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와중에 그의 가족은 물론 인ㆍ친척까지 돈다발을 싸들고 서울 도심과 수도권, 나아가 해외로까지 건물과 땅을 마구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간만에 제대로 한 건했다며 우쭐대는 모양인데 글쎄다. 정권이 몇 번이고 바뀌는 동안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권력의 앞치마 노릇을 해 온 검찰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더 웃기는 것은 추징금 산출법이다. 16년간 물가상승률은 간 곳이 없다. 그 사이 소비자물가는 어림잡아 65%를 훌쩍 넘었다. 당시 300원대이던 라면 한 봉지가 지금은 800원대가 됐다. 적어도 두 배 반 이상 뛴 것이다. 아무리 낮춰 잡아도 미납금 1672억원의 두 배 이상, 그러니까 적어도 3500억원 정도는 추징했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더 치열하게 따지면 이자문제까지 불거진다. 민사소송의 연 20% 손해배상금을 적용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연체 이자만 줄잡아 5000억원대에 이른다. 추징금 공소시효가 4개월밖에 남지 않자 허겁지겁 시효연장에만 매달린 얼빠진 정치권이 이제와 후회한다.

그렇다면 헌법도 숨죽이는 ‘국민정서법’이 나설 차례다. 최종 관문이다. 살던 집에서 여생이라도 살게 해 달라 간청하는 겁에 질린 낡은 권력도, 훗날 국립묘지 안장 여부도, 그 자손들의 앞날도 이 문턱을 넘어서야 비로소 오케이가 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민심이 싸늘하다. 단박에 내놓아라, 그래도 남는 장사다, 갚아야 갚는 것이다, 1700억원을 내놓겠다는 자체가 개탄스럽다, 대대손손 안 먹고 안 써도 그 돈 못 만져본다 등등. 푸념과 분노가 인터넷을 달군다.

당하는 전 씨와 그 일가 입장에선 세상 참 야속하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갈 길이 아직 한참 남았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기에는 그 업보가 너무 무겁다. 무소불위의 7년 권세, 5공 청산은 영원한 진행형이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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