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리는 1924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지만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시신은 1999년에야 한 방송탐사팀이 찾아냈다. 2002년 6월 국제 에베레스트 청소 원정대는 ‘77 K.E.E.’라고 표기된 주황색 삼각 깃발을 발견한다. 1977년 세계 8번째,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원정대 ‘Korea Everest Expedition’의 흔적이었다.
9월 15일은 고상돈이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 36년 된 날이자, 이 때문에 만들어진 ‘산악인의 날’이다. 고상돈은 1979년 북미 최고봉인 알라스카 매킨리를 정복하고 하산하다 말로리처럼 조난당해 숨졌다. 그는 매킨리로 떠나기 전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빙벽에 매달려 강풍을 맞으면 그대로 묻히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나는 가야 하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 몸을 전율시켰다. 정상이 바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멸의 자취를 남겼지만, 마음의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거기 있는 산’은 ‘그냥 좋은 것’이었다. 이유가 필요없는 순수의 열정은 불굴의 의지를 낳고,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점을 이들 산사나이는 보여주고 있다.
콕 찌르면 푸른 물이 쏟아질 것 가을 하늘이다. 산에 오르기 좋은 시절이 찾아온 것이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