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가는데, 산은 날 좋다 합니까. 그냥 열심히 좋아하세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문답형 힐링 상담을 하고 있는 법륜스님의 충고이다. 두 사람은 산을 소재로 존재에 대한 경외,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르고 또 올랐던 조지 말로리는 1924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지만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시신은 1999년에야 영국 BBC 방송 탐사팀이 찾아냈다.
2002년 6월 ‘에베레스트 국제 청소 원정대’는 고산지대를 청소하던 중 ‘77 K.E.E.’라고 표기된 주황색 삼각 깃발을 발견한다. 1977년 세계 8번째,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원정대, ‘Korea Everest Expedition’의 흔적이었다.
9월15일은 인천상륙작전 63주년 기념일이자 올림픽에서 남북한 대표가 처음으로 공동입장한지 13년된 날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고상돈이 산소가 고갈돼 가는 상황에서 ‘칼날능선'을 헤쳐나가는 악전고투 끝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지 36년 된 날이자, 이 등정을 기념해 만들어진 ‘산악인의 날’이었다.
조지 말로리가 오르지 못한 에베르스트에 오른 고상돈은 그러나 2년뒤 북미 최고봉인 알라스카 매킨리를 정복하고 하산하다 말로리처럼 조난당해 숨졌다.
그는 매킨리로 떠나기전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빙벽에 매달려 강풍을 맞으면 의식은 점점 몽롱해지고 그대로 묻히고 싶은 충동이 뇌리를 마구 할퀸다. 그러나 나는 가야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몸을 전율시켰다. 정상이 바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불멸의 산 사나이’ 고상돈과 조지 말로리는 모두 산을 목숨 바쳐 사랑했다. 그들은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지만, 마음의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거기 있는 산’은 ‘그냥 좋은 것’이었고, 어떤 모습을 보여도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이유가 필요없는 순수의 열정은 불굴의 의지를 낳고,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점을 말로리와 고상돈은 보여주고 있다.
콕 찌르면 푸른 물이 쏟아질 것 가을 하늘이다. 바야흐로 산에 오르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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