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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치킨집의 ‘치킨게임’
베이비부머의 퇴직으로 생계형 자영업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치킨집이 유력한 대안이다. 만만해 보이고, 다른 치킨집보다 잘 될 것이란 생각에 물고 물리는 또다른 의미의 치킨집의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추석 다음날인 20일, 서울 시내 꽤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치킨집을 시작으로 하나둘 영업을 시작하는 가게가 늘었다. 음식점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새삼스런 생각과 다들 ‘밥은 먹고 살까’하는 느낌이 교차했다.

“바삭하고 감칠맛이 돌며 주로 맥주를 곁들여 먹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 해외에서도 인기다”로 시작하는 며칠 전 월스트리트저널 기사가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치킨집 버블’ 때문에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이 기사는 흥미로웠다. 치킨집이 한국경제의 복병이라는 자극적인 전개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치킨은 1970년대 전기구이 통닭에서 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장작구이 등 무수히 진화하면서 우리에겐 친근한 외식거리인데다, 무엇보다 직장인들이 “회사 때려치우고…”라며 울컥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치킨집이어서 눈길이 갔다.

KB연구소의 보고서는 동네에서 사방 보이는 치킨집 주인들의 고민을 읽기에 충분했다. 치킨전문점은 2002년 이후 해마다 9.5%나 증가하고 있다. 주거 및 근무지 1㎢ 내에 영업 중인 치킨 전문점은 평균 13개, 10년 전 7개에 비해 2배 늘었다.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치킨점 창업자의 나이다. 50대 비중이 10년 전에 비해 2배나 늘었고, 20대도 증가세였다. 퇴직 후 치킨집 창업에 뛰어든 50대, 취업난에 치킨집이라도 생각하는 20대가 늘어난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닭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닭집이 느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문제는 얼마나 남는 장사냐 하는 점이다. 2011년 기준 치킨전문점의 연평균 매출은 8100만원. 원가 임차료 인건비 등을 빼고 주인이 가져가는 돈은 1년에 2500만원에 불과하다. 커피전문점이 평균 영업소득이 연 4200만원인 것에 비해 절반 정도에 그친다.

‘봉급쟁이’를 하다 치킨집을 차린 사람의 경우 창업 전 소득이 3300만원. 하지만 치킨집을 하고는 2400만원으로 줄었다. 본인뿐 아니라 월급 안 받는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치킨집이 적잖은 점을 생각해 보면 가족들이 일해 연봉이 2400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치킨집은 늘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으로 생계형 자영업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치킨집이 유력한 대안이다. 창업아이템으로 만만해 보이고, 그래도 다른 치킨집보다 잘 될 것이란 생각에 물고 물리는 또 다른 의미의 치킨집의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는 서울에서 치킨집을 13년간 해온 성모 씨의 사례가 언급됐다. 2000년 치킨집을 열었을 때 동네 치킨집은 3개, 지금은 11개다. 공휴일에도 하루 15시간씩 자정까지 일하지만 빚을 갚을 수 없다. 이 기사의 마지막은 비좁은 가게 안에 앉은 그녀의 말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 치킨집은 안 할 거예요.”

그녀는 치킨집을 그만두면 되겠지만, 치킨집 창업을 생각하는 무수히 많은 ‘봉급쟁이’와 젊은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답답한 세상이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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