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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과도한 시장성 자금이 부메랑된 동양
재계 순위 38위의 동양그룹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지난달 30일 주력 기업인 (주)동양을 비롯해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3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이날 만기가 돌아온 1100억원 규모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막지 못한 것이 결정타였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연말까지 갚아야 할 회사채와 CP는 1조원이 훨씬 넘는다. 하지만 지금 그룹 자금 사정으로는 감당이 어려워 보인다. 1957년 시멘트 사업을 시작으로 한때 재계 5위권까지 부상했던 기업의 침몰이 안타깝고 착잡하다.

동양그룹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시장성 자금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탓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동양은 빚의 절반 이상이 회사채와 CP로 구성돼 있다. 자금 수요가 발생하면 은행 등 채권단이 아닌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기업의 신용도가 높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동양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며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금리를 마구 올리며 돌려막기식으로 CP를 발행했다. 그게 부메랑이 돼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계열 증권사를 통해 일반투자자들에게 매각한 것이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이는 까닭이다. 기업어음은 주식과는 달리 공시 의무나 발행한도 등에 제한이 없다. 부실기업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기업 회사채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동양그룹 역시 비슷한 사정이어서 기관투자자들이 인수를 외면한 지 오래다. 그 덤터기를 일반투자자들에게 씌운 셈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회사채를 계열 금융사를 통해 판매했는데도 손을 놓고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투자부적격 계열사의 회사채나 CP에 대한 투자 권유 행위를 금지하는 관련법이 이달 하순 시행된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제2, 제3의 동양 사태를 막지 못한다. 이런 기업은 아예 발행 한도를 처음부터 정해 이를 넘지 못하도록 총량 관리를 하는 등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금융투자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물론 개인에 있다. 하지만 불완전투자 여부까지 개인들이 일일이 판단하기는 무리다.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선의의 투자자 보호 장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의 원칙은 중요하나 마냥 시장에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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