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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박승윤> 박근혜 정부의 뇌관
전문가들은 박근혜정부를 뒤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사람 쓰는 행태를 꼽는다. ‘수첩 인사’는 첫 조각 과정에서 이미 효용이 다 했음을 보여줬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기용하려다 청문회에서 낙마한 인사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돌파력이 대단하다. 중산층 증세 시비를 불러온 세제 개편안과 기초연금 공약 축소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화약고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수개월 동안 작업해 만든 세제 개편안을 ‘하루 만에’ 수정케 했다. 증세 대상을 연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높이는 방법으로 중산층 월급쟁이들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대선 공약을 축소한 직후에는 노인들을 만나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려 ‘이해한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야당은 정기국회에서 핵심 쟁점으로 삼을 태세지만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반대시위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촛불 시위에 휘둘려 레임덕 지경까지 갔던 상황을 되새겨 보면 민심과 소통하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촉수는 가히 입신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소통이 사람 쓰는 문제로 들어가면 꽉 막혀버린다. 대중적 지도자에서 제왕적 통치자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사실 전문가들은 박근혜정부를 뒤흔들 수 있는 뇌관으로 재정이나 복지 정책보다 사람 쓰는 행태를 꼽는다.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는 첫 조각 과정에서 이미 효용이 다 했음을 보여줬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기용하려다 청문회에서 낙마한 인사가 적지 않았다. 그나마 임명 과정에서 하자가 발견돼 교체된 것은 국가적으로 다행이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기초연금과 관련한 무책임한 사퇴 행태는 한심하다 못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총리가 지적한 대로 소신이 아닌 책임감과 사명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낯부끄러운 사건으로 인한 도중 하차는 이 같은 사태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을지 모른다. 인수위 시절 야당은 물론 여론도 크게 나빴음에도 박 대통령은 반발을 무릅쓰고 그를 청와대까지 데리고 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낙마 과정은 그를 못마땅해 하던 권부에선 쾌재를 부를 일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의 인사 검증에 대한 불신을 극대화시킨 사건이다. 채 총장의 ‘혼외 자식’이 사실일 경우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검증이 제 입맛에 맞게 그동안 은폐돼 왔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30여년 만에 재입성한 박 대통령에겐 저돌적인 추진력, 용인술 등 아버지 박정희의 통치 DNA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가졌던 권위주의, 비밀주의의 DNA는 혹시 있다면 빨리 없애버리길 바란다. 그래야 장ㆍ차관과 비서진 등 참모들도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고 십년대계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의 소정방은 신라를 도와 백제를 멸망시켰다. 귀국한 소정방은 당 고종이 신라까지 정벌하고 오지 그랬느냐고 하자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신하들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며 아랫사람이 윗사람 모시기를 자기 부형에게 하는 것 같이 하니, 비록 작은 나라라 하나 도모할 수가 없었나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책임 총리ㆍ책임 장관은 말로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믿고 맡겨서 이뤄지는 것이다. par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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