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이 새 국면을 맞았다.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대화록은 애초부터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으며,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사저인 봉하마을로 옮겨갔다 나중에 회수당한 청와대전산관리시스템인 ‘봉하e지원’에서 대화록 초안이 삭제된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또 국정원에 보관돼 온 것과 같은 내용의 수정본도 찾아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무슨 영문인지 당시 청와대가 영구보존 대상 기록물을 제멋대로 다뤘다는 얘기다.
검찰은 이제 대화록 초안이 누구 지시로 어떻게 삭제됐는지, 또 국가기록원 이관이 왜 누락됐는지 밝혀내야 한다. 대통령 기록물을 온전하게 보관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행위는 엄연한 실정법 위반으로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대화록 초안 삭제는 대통령 지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잘못이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법적 책임을 물을 일이다.
공교롭게도 4일은 당시 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지 꼭 6년째가 되는 날이다. 노-김 회담은 사실 성사자체부터 문제가 많았다. 퇴임 4개월을 앞두고 과욕비판이 비등했지만 그대로 강행됐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저자세로 일관했고, 생명선인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이상하게 생겨…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등의 얼토당토않은 표현으로 회담했던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검찰 조사 결과로 미뤄보건 데 이런 대화는 그나마 약과였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나 기이한 표현이 있었기에 노 전 대통령이 회담 녹취록을 푼 대화록 초본을 보고는 “난 이렇게 이야기한 적 없는데 왜 이렇게 정리됐느냐. 의도와는 다른 것 같다”며 수정을 가하도록 지시했겠는가. 지금까지 논란의 핵심인 NLL포기 발언을 둘러싼 진위는 물론이고 도대체 어떤 대목에서 어떤 표현들이 삭제됐는지 있는 그대로 풀어내 속 시원하게 공개해야 옳다.
검찰 중간 수사 결과에 대한 정치권의 성급한 대응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초폐기가 아니라 존재를 확인한 것이라는 민주당 논리는 황당하다. 새누리당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 등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들뜨고 흥분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수사가 중요하다. 조사에 협조는 못할망정 결론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