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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진실은 저 너머, 여기에 있다
‘채동욱 혼외자 논란’. ‘찍어내기’란 말이 뒤섞이고 있지만 이 사안은 진실규명이 먼저다. 배경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답답해하는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답이 어떤 것인지는 말 안해도 잘 알 것이다.


‘하나의 사건에 네 가지 진실.’

하나의 사건엔 하나의 진실만이 있다. 네 가지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진실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란 무겁고 근원적인 물음에 또 다른 진실로 답한 이는 세계적 거장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다. 그는 1951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받은 ‘라쇼몽(羅生門)’을 통해 이 거대한 물음을 다시 환기시킨다.

진실은 오직 하나다. 사무라이가 죽었다. 하지만 사무라이를 죽였다는 산적과 남편을 잃고 겁탈까지 당한 사무라이 부인의 진술은 엇갈린다. 무당의 입을 빌려 나타난 사무라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얘길 한다. 급기야 목격자인 나무꾼까지 이들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소리친다. 이 즈음에 이르면 “진실이란 인간에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란 회의까지 들게 된다. 각자에게 자신만의 진실이 있고, 개연성도 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진실은 하나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로자와 감독도 “인간은 진실할 수 없다. 언제나 윤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란 얘기가 여기에 대한 답일 것이다.

올해 국민들을 가장 짜증나게 한 사건을 꼽으라면 상반기에 ‘윤창중 스캔들’, 하반기엔 ‘채동욱 혼외자 논란’일 것이다. 혼외자 관련, 진실은 하나일 텐데 이 역시 라쇼몽처럼 진술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화 같은 영화가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퇴임식에서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로 살아왔다”라는 말을 하자, 곧바로 임모 씨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는 사람이 등장, “(채 총장이) 아버지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엉뚱한 사람을 착각하고 있다”, “몇 년 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한이 풀렸다”란 얘기로 이어지고 있다. 혼외자의 가상편지가 칼럼에 등장하더니, 지난 주말에 채 전 총장 부인 이름의 ‘가짜글’이 온라인을 달궜다.

‘찍어내기’란 말이 뒤섞이고 있지만 이 사안은 진실규명이 먼저다. 그리고 배경이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격도 생각하고, 이런 일들을 쳐다보고 답답해하는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답이 어떤 것인지는 말 안해도 잘 알 것이다.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진실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안이 1년이 됐다니 답답할 뿐이다. 진실을 외면한 채 벌이는 여야의 B급 정쟁. 대화록 공개로 사실은 밝혀졌는데, 정치권은 진실을 해석(?)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논란은 어떤가.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사실을 취하고 버리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진실을 뒤틀고 비틀어 미래세대에 주입하려는 시도는 민망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진실이 저 너머에 있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가 아닌 우리 곁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진실은 여기에 있지만 ‘진실을 윤색하려는 자’들 때문에 진실은 늘 저 너머에 있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

라쇼몽의 원작자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인생은 이슬이나 번개처럼 순식간이고 허망하다(如露亦如電)”라고 한다.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 역시 허망할 뿐이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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