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부채에 관한 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선 지난해 기준 정부 채무 대비 공기업 채무 비율이 118%에 이른다. 국가 채무보다 공기업 빚이 훨씬 많다는 소리다. 이런 기형적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마 한국 말고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빚도 감당키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아찔할 정도로 빠른 증가 속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 등 부채 상위 10대 공기업의 지난해 말 빚은 345조원이다. 그런데 이게 올 연말이면 373조원 규모로 늘어난다. 이런 속도로 불어나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도 당해내기가 어렵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공기업 빚이 많은 것은 정부의 각종 국책사업을 대신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부채가 150조원에 육박하는 LH공사의 경우 지난 정권 당시 보금자리주택 30만가구 건설을 주도했고, 세종시 건설과 혁신도시 사업 등 대규모 국책 토건사업을 진행하다 큰 빚을 졌다. 부채가 60조원가량인 한전은 제대로 받지 못한 전기 값이 고스란히 빚으로 쌓였다. 14조원의 부채가 있는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 일부 공사로 절반 이상인 8조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해 추진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았다.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하게 대형 국책사업을 벌인 정부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민간 기업 같으면 이 정도 빚이 많으면 그야말로 뼈를 깎는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들에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 방만한 경영은 여전하다. LH공사는 빚이 그렇게 많은데도 직원 수가 정원보다 10%나 많다. 공기업 빚 랭킹 2위인 한전은 2010년 이후 584억원을 직원 자녀 무상학자금으로 지출하는 등 복리 후생에 돈을 펑펑 쓰고 있다. 신입사원 연봉을 2년 새 60%나 올려줬다. 그것도 모자라 한국수력원자력발전은 비리로 연루된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수십억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공기업의 빚은 산더미인데 급여를 포함한 후생과 복지는 최고 수준이라면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되니 신의 직장이란 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공기업 부채와 방만경영이 문제될 때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천명하지만 조금이라도 고쳐졌다는 소리는 여태 들어보지 못했다. 공기업 부채의 부담은 결국 국민들 몫이다. 지금이라도 공기업 개혁의 칼을 높이 세워야 한다. 또 실기하면 나라의 재정을 위험에 빠뜨리는 최대 요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