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연대보증은 모든 창업자를 선량하게 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생존확률 1%라는 최악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죽음의 계곡’에 기꺼이 뛰어들려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구마저 내놓으란 소리와 같다.
5월 이후 창업ㆍ벤처, 중견기업, 소상공인 관련 대책이 차례로 발표되면서 창조경제의 얼개가 짜이고 있다. 한술에 배부르진 않겠지만 돌아가는 일의 모양새가 제법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앞뒤가 뒤바뀐 심각한 부조리가 있다. 창업자 연대보증 문제다.
상당한 폐단을 안고 있는 이 문제는 지금까지 될듯 말듯 하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금융기관과 보증기관의 강력한 반대 탓이다. 최근 주무부처 장관과 대통령까지 이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주문했지만 아직 그 시급성까진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국회 국정감사까지 겹쳐 향후 20여일 논의조차 못해볼 처지다. 중기청이 이달 중 내놓기로 한 ‘재도전 생태계 구축방안’에 발이라도 걸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 시급한가.
창업자 연대보증은 창조경제의 기반이 될 창업의 물꼬를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란 기존 기업들의 융복합과 분업, 다양한 협업 등 경영혁신 활동에서도 나오지만 창업이라는 예비군이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돌아간다.
이 문제 해결이 없이는 창조경제 구성요소의 진입과 퇴출, 재진입 등 선순환 구조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왕성한 창업과 성공 또는 실패에 이은 재도전은 창조경제의 기본 작동원리다.
하반기 들어 전 금융권에서 제3자에 대한 연대보증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창업자 본인에 대한 연대보증제도는 아직 엄연히 살아서 선량한 창업희망자들을 도전의 대열에서 돌려 세우고 있다.
창업자 연대보증은 모든 창업자를 선량하게 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생존확률 1%라는 최악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죽음의 계곡’에 기꺼이 뛰어들려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구마저 내놓으란 소리와 같다. 창업자를 모두 잠재적 신용불량자로 예단하고 연대보증이란 족쇄를 채우는 것은 손쉬운 채권 확보 관행에서 비롯된다. 99%에 해당하는 실패한 창업자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재기기반마저 상실해 실패를 통해 배운 귀중한 기술과 경험은 써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연대보증제도는 아직 한국에만 남아 있는 자본주의의 화석이다. 일찍이 베네치아 상인 샤일록이 대출 담보로 확보했던 인육계약에 그 기원이 닿는다. 국내에선 1974년 오일쇼크로 경제위기가 닥치자 정부가 기업들의 채무를 동결해줬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이를 악용해 돈을 빼돌리자 모든 기업인에 대한 연대보증을 의무화하게 됐다는 점에서 기업인에게 원죄가 없진 않다.
해법이 있다.
모든 창업자가 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일단 받아들이되 기술에 대한 엄정한 가치평가가 필요하다. ‘무상창업’ ‘껍데기창업’과 같은 위험요소는 철저히 걸러낸 다음 대출이 아닌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면 된다. 대신 투자자에 대해서는 대표이사 교체권, 기업 매각이나 청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투명경영을 위한 징벌적 배상도 투자자를 위한 부가적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이제 급한 것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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