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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이권우> 잘 듣자!
택배반송으로 상했던 내 기분
친절한 상담원에 눈녹듯 풀려
바쁜 일상 ‘듣기’에 소홀한 사회
耳옆 口붙은 ‘聖’의 의미 되새겨


순간, 특이한 일이라고 여겼다. 세상 좋아져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면 집까지 배달해준다. 이거야 이제 특기할 일이 아니다. 판매처가 메일을 보내주는데 운송장 번호를 누르면 물품운송과정을 볼 수 있다. 물건이 도착할 날짜가 지났는데 아직 오지 않길래 번호를 눌러보았다. 예상밖으로 반송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택배기사의 전화를 못 받는 일이 자주 있다. 강의하거나 강연하느라 전화를 무음으로 해놓거나 아예 꺼놓고 때문이다. 그래도 불편을 겪은 적은 한번도 없다. 집에 사람이 없을 적에 물건을 놓기로 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에 사는지라 약속한 장소에 물건을 놓더라도 분실 위험이 있기는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아는 이들이 택배로 물건을 보내더라도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물건 받을 사람의 의견을 묻지 않고 반송조치했으나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 기다리면 연락이 올 터이고 바쁜 와중에 알아보는 것도 시간낭비라 싶어 처음에는 가만히 있으려 했다. 그러다 문득, 한번 자초지종을 알아보자 마음먹었다. 먼저 물건 산 곳에 전화했다. 답변이 엉뚱했다. 아마 그 지역에 물품이 많이 배송되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싶단다. 상황을 설명하고 한번 알아보고 전화 달라 했다. 전화가 왔다. 대뜸 택배 기사가 전화를 수차례 했는데 받지 않아 반송조치했고, 이를 다시 받고 싶으면 나보고 택배비를 내라한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전화받는 직원이 말이 더 많고 목소리도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불만을 잘 듣고 상황에 맞게 설명하면 되는데, 막무가내였다. 거기다 자꾸 택배기사한테 전화해보라고 채근했다. 전화했는데도 받지 않아 반송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장사를 하다보면 별일이 다 있을 텐데 이런 상황을 이미 겪었을 터인 만큼 관련 약관이 있느냐 했더니, 신경질적으로 다른 말만 해댔다. 전화기를 확인해보니 한 번만 왔다.

씁쓸했다. 소비자가 그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면 배송까지 책임져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책임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 두 번째로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내용인즉슨, 부피가 커서 평소 두던 곳에 놓을 수 없었고 그럴 경우 고가의 제품으로 짐작되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자신이 책임져야 하니 반송했다는 것이다. 매우 당당해서 살짝 당황했다. 과정을 다 거쳤으므로 자신은 할 말이 없고 택배회사에 전화해보라고 한다. 통화할 적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무책임하고 비아냥거리는 투였다.

쇼핑몰에서 연락이 왔다. 상황파악을 잘못했다며 사과했다. 그러니, 택배비를 반분하잖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택배비라 해봐야 고작 2500원이었다. 그 돈이 아까워서 시간 버리며 전화했겠는가. 다 부담할 터이니 주소지를 바꿔 보내라 일렀다. 두 군데 관련자와 통화하며 사람들이 너무 바쁘고 예의 없고 무언가에 시달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억누르는 어떤 부정적인 기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곳은 택배회사였다. 앞의 상황과는 달리 잘 들어주고 적절하게 응대했다. 전화를 끊으며 상대방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정말 친절하다고. 어느 정도의 불편은 속내를 털어놓다보면 저절로 풀어지게 되어 있다. 이른바 감정노동자가 겪을 어려움도 충분히 짐작하나, 얽히고설킨 상대방의 감정을 잘 풀어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거룩할 성(聖)은 입(口)에 귀(耳)를 대고 있는 모양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성의 자리다. 이번에 작은 소동을 겪으며 다른 무엇보다 이 점을 깊이 깨달았다. 나는 과연 잘 들어주고 잘 다독여주고 잘 설득하고 있는가? 알고 보면 세상사가 교훈으로 그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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