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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가을걷이와 소박한 건강밥상
약 한 달 전에 시작한 고구마 캐기 작업이 이제야 마무리되었다. 같은 식량작물인 감자와 옥수수에 이어 고구마 수확까지 끝남에 따라, 이달 말쯤 배추와 무 등을 거둬 김장만 담그면 기나긴 겨울 휴지기에 들어간다.

강원도 전원생활 4년차인 올 한 해 농사과정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이젠 제법 농부가 된 듯해 스스로도 대견하다. 지하창고와 거실 등에 쌓인 수확물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배가 부르다. 이런 수확의 기쁨에 더해 건강과 행복까지 얻게 되니 더욱 그렇다.

사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힘든 노동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 노동은 비록 힘은 들지언정 괴롭지는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심신에 활력을 준다. 그래서 필자에게 농사짓기란 그 과정 자체가 힐링(healing)이요, 행복 쌓기였다.

애초 귀농 초기 농사는 우리 가족의 건강한 먹을거리부터 자급하자는 목표를 세웠기에, 기르는 작물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금했다. 이렇게 하자 땅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고, 건강한 먹을거리로 보답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땅의 생명력과 정화력, 생산력에 새삼 놀랐다.

올해의 경우 회복된 땅에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식량작물 위주로 고추와 오이, 상추, 호박, 토마토, 그리고 김장용 배추와 무, 갓, 파 등을 두루 심었다. 비록 억센 풀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땅에 비닐 멀칭(mulching·바닥덮기)을 했지만 친환경 농법을 끝까지 고수했다. 그 결과, 땅의 힘과 햇볕, 바람, 비 등 자연의 조화가 빚어낸 작물의 생육과 결실은 기대이상이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이처럼 건강한 먹을거리뿐 아니라 흙을 딛고 생명을 대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정서적ㆍ정신적 안정도 얻게 된다. 아울러 생명을 향해 열린 마음은 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이어지며 이는 가정의 화평을 가져온다. 생산물을 서로 나눔으로써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물론 해마다 농사를 지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농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확의 계절, 가을이 풍요롭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식량작물 재배로는 품값도 건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직접 땀 흘려 수확한 농산물로 차리는 소박한 건강밥상은 온전히 나와 가족의 것이 된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50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58만명)를 중심으로 한 귀농·귀촌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전원행의 목적은 아마도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2막을 펼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돈, 명예 등 도시의 가치를 내려놓고 건강, 무욕 등 전원의 가치를 지향할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한 해 농사를 결산하는 가을걷이를 끝내도 돈이 안 된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절약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힘으로 정직하게 노동하여 땅을 일구고, 그 땅이 주는 소산물로 차리는 소박한 건강밥상이야말로 전원생활의 참 행복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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