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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칼럼 - 박지영> 스타들이여, 연극무대로 눈을 돌려라
‘다니엘 래드클리프, 헬렌 미렌, 제임스 맥어보이….’

세계적인 이 영화배우들이 레드카펫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자 로열 오페라하우스 앞은 열기로 가득 찼다. 무슨 세계적인 영화제라도 열린 것일까? 아니다. 지난 4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로렌스 올리비에상’ 시상식장의 모습이다.

올리비에상은 영국의 연극ㆍ뮤지컬 무대에 오른 배우에게 주어지는 공연계 최고의 상이다. 이 상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은 세계적인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이날 ‘이니시만의 불구자’라는 연극에 출연한 래드클리프와 광기 어린 ‘맥베스’를 연기한 맥어보이는 아쉽게도 상을 타진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들은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축제를 즐겼다는 사실이다.

지난 6년간 런던에 살면서 기분 좋은 일 중의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크린 배우들을 연극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케빈 스페이시(‘리처드 2세’), 주드 로(‘햄릿’), 이안 멕켈른(‘고도를 기다리며’), 키라 나이틀리(‘더 미산스로프’), 레이첼 와이즈(‘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이 경쟁이라도 하듯 연극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연극 무대만이 갖는 마력 때문이다. 특수효과와 상업성이 판치는 영화 환경에서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대 외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오로지 몸과 목소리로 타인의 마음을 흔드는 원초적인 행위로 말이다.

2008년발 세계적인 경제위기 한파가 여전한데도 런던 공연계는 지난 8년 새 매년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은 특히 연극계로서는 기념비적인 해였다. 영국 문화예술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공연계 전체 수익은 5억400만파운드(약 8700억원). 이 중 연극으로만 벌어들인 수익이 7700만파운드(약 1327억원)로, 공연 전체 수익의 15%를 차지했다.

배고픈 연극이 상업적인 뮤지컬에 맞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기록적인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배우 주드 로는 한 인터뷰에서 연극 ‘햄릿’에 출연한 이유를 “저렴한 가격에 새로운 연극 관객을 발굴하기 위한 극단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런던의 연극 공연 자체가 워낙 수준이 높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새 세계적인 스타들이 런던 무대에 오른 것도 연극의 흥행에 큰 자극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울에서도 최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이 화려하게 열렸다. TV나 영화에서 보아오던 유명 배우들도 눈에 띄었다. 뮤지컬도 이젠 흥행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연극은 아직도 배고프고 소외돼 있다. 우리라고 런던 연극계처럼 특수를 누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나는 배우 송강호가 ‘늘근 도둑이야기’에 나온다면, 배우 이수현이 ‘에쿠우스’에서 절규한다면 열일 제치고 달려가겠다.

스타들이여, 연극 무대로 눈을 돌려라. 우리는 당신들을 보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내어줄 것이다. 그리하여 연극 또한 흥행몰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극단은 탄탄한 재정으로 더 좋은 연극으로 보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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