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지시로 제작된 日지도
“독도·울릉도는 조선영토” 표기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때도
독도는 일본영토서 명백히 배제
‘한반도가 있어 동해바다가 있고, 동해바다가 있어 독도가 있네. 파란 하늘 바람을 머리에 이고, 푸른 바다 물결을 가슴에 안았네. 해국(海菊)이 수줍게 반기는 독도 땅에 살포시 발을 딛고, 맑은 숨을 쉬고 나니, 내 마음도 덩달아 맑아지네. 독도가 있어 동해바다가 있고, 동해바다가 있어 한반도가 있네.’
이상은 필자가 지난 22일 독도를 방문한 소감이다.
독도는 1530년 제작된 우리나라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부도인 동람도(東覽圖)의 팔도총도(八道總圖)에 우리 영토로 표기돼 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빙하는 일본자료를 울릉도에 소재한 독도박물관에서 보았다. 1592년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豊臣秀吉)의 명령으로 구키 요시타카(九鬼喜隆) 등이 제작한 조선국지리도(朝鮮國地理圖)에는 독도와 울릉도는 물론 대마도(對馬島)까지 조선의 영토로 표기되어 있다.
국가 간 영토분쟁에 활용돼 국제적으로 공인된 자료인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도 보았다. 1785년에 일본의 지리학자인 하야시(林子平)가 제작한 이 지도는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에 수록되어 있으며, 일본과 조선, 류큐(琉球-오키나와), 하이국(蝦夷國-아이누족 국가), 그리고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가 그려져 있다. 나라마다 다르게 채색된 이 지도에는 대마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해 가운데 2개의 섬인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과 같은 색으로 그렸고, 죽도(竹嶋)라고 써놓고 ‘조선의 것 (朝鮮ノ持二)’이라고 기록한 것도 보았다. 호사카(保坂祐二) 세종대 교수에 따르면, 일본이 오가사와라 군도를 두고 미국과 영유권 분쟁을 하던 1854년에 독도가 조선 땅으로 표기된 프랑스어 번역판 삼국접양지도를 제시해 영유권을 인정받은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일본의 주장은 자가당착임을 알 수 있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울도 군수가 울릉전도, 죽도·석도를 관할한다고 명시하였다. 석도는 돌섬인 독도이다. 일본은 독도에 대해 무주지 선점을 위한 국제법상 국가의사의 표현으로 1905년 2월 22일 시네마현 고시 40호를 거론하지만 이는 소수가 회람한 것에 불과하다. 대한제국은 일본보다 먼저 중앙정부 차원에서 공포한 칙령이고, 일본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뒤늦게 고시한 회람이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독도 침탈 음모가 더욱 구체화돼가고 있다. 일본 각료들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뒤 이를 국방백서에 수록하고 교과서를 왜곡하더니,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독도 침탈을 시도하다가, 이제는 진실을 왜곡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국제적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1분27초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지난 16일에 유포했고, ‘독도 100문 100답집’을 만들어 유포할 계획이라고 하니, 여론몰이를 한 다음 수순으로 무력도발이 우려된다.
이 동영상에서 제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승전국인 연합국과 체결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근거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회담에서 사용했던 지도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교활함을 보이고 있다. 그 지도가 미국 국립 문서기록 관리국에 당시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의 미국 전권대사인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의 ‘대일평화조약 문서철’에 보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독도의 날인 10월 25일의 한국 군·경 독도방어 합동훈련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항의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한국의 국가안보 차원에서 국방력 강화는 기본이며, 초정파적 협력을 통해 국토를 수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