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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책도둑
지난해 성탄절, 60대 남성이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 5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사라졌다. 45년 전 한 도서관에서 책 5권을 훔친게 내내 마음에 걸려 죗값을 치르겠다고 그곳을 찾았지만 없어진 뒤라 성금으로 대신한다는 사연이었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대형서점은 책도둑이 으레 있기 마련이다. 교보문고에서 2년 넘게 시가 3억원어치의 책을 훔쳐 중고서점에 팔아넘긴 도둑이 있는가 하면 책사랑이 지나쳐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책에 손이 가는 책도둑도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경우 현재 무려 50대의 CCTV가 작동 중이지만 여전히 책도둑은 활동 중이다. 책도둑의 역사와 리스트는 길다. 그중엔 가톨릭 고위 성직자도 있다. 17세기에 활동한 잠바티스타 팜필리 추기경은 다른 추기경이 수집한 책 구경을 갔다가 역사서 한 권을 슬쩍 했다. 책이 없어진 걸 알아차린 주인이 몸 수색을 우겼고 몸싸움 끝에 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 책도둑이 나중에 교황이 된 인노켄티우스 10세다.

마커스 주삭의 베스트셀러 ‘책도둑’에 나오는 책도둑은 예쁜 소녀 리젤이다. 2차 세계대전 와중, 입에 풀칠이라도 시키려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가던 기차안에서 어린 동생이 굶어 죽게 되자 땅에 파묻는다. 그때 리젤은 바닥에서 한 낯선 남자의 책 한권을 몰래 줍는다. 책 제목은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그후 모두 6권의 책을 훔친 리젤은 한 권 한 권을 온전히 내면화하며 말의 힘을 알아간다. 한 시대를 광풍으로 몰아갈 수도 있고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10월 23일자 뉴욕타임스 9, 10면이 백지 지면으로 나가 독자들이 놀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달 개봉될 영화 ‘책도둑’의 광고였다. “글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라”는 메시지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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