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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박도제> 경찰이 위험하다
이번 국정원 댓글 수사를 둘러싼 일련의 경찰의 대응을 보면, 맹목적인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엿보인다. 이같은 조직문화가 유지되어서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금 쌓아올리기 어렵다.


일주일 전 경찰의 날.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10만 경찰의 존재에 대해 반짝 관심을 모았지만, 그뿐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봄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 짙어진 경찰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는 늦가을이 되도록 여전하다. 오히려 댓글 조작 의혹이 군 사이버사령부 등으로 확대됐으며, 정치권에서는 대선 불복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단초를 제공한 경찰로서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되짚어 보자. 애초에 상황을 제공한 국정원이 가장 원망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서둘러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 수사를 맡았던 담당자의 외압 의혹 제기.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드는 주요 배경이 됐다. 그 중에서도 경찰의 치부를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권 과장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많아 보인다. 열심히 치안 현장을 누비는 경찰도 많은데, 다시금 권력의 시녀라는 인식을 심는 데 일조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반응에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도 일조하는 듯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경찰 조직의 특성상 권 과장과 같은 중간 간부급 인원의 돌출 행동에 대해 거부감이 앞설 수 있다. 물론 권 과장의 폭로를 계기로 자성을 요구하는 경찰 내부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경찰 내부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직원에 대해 인사 조치가 뒤따르는 것을 보면 경찰의 조직문화가 얼마나 구태의연한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퇴임한 한 지역 경찰서장이 “경찰이 위험하다”며 지적한 경찰 내부의 이야기에서도 왜곡된 경찰 조직문화의 단면이 엿보인다.

선진화된 조직문화에서는 권 과장과 같은 행동은 조직의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박수받을 만하다.

모든 조직에는 일정한 문화가 있다. 경찰은 군대와 흡사한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있다. 그리고 공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법과 원칙에 따른 업무 집행이라는 문화도 있다. 이 둘이 부딪히는 경우에는 선택의 문제에 놓이게 된다. 특히 상관이 공권력의 오남용을 지시하는 경우가 그렇다.

조직문화는 많은 것을 결정짓는다. 조직의 목적은 물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선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조직문화는 중요하다. 이번 국정원 댓글 수사를 둘러싼 일련의 경찰의 대응을 보면, 맹목적인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엿보인다. 이 같은 조직문화가 유지되어서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금 쌓아올리기 어렵다. 이번 권 과장의 폭로를 계기로 경찰로서는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함과 법과 원칙에 따른 조직문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뾰족한 방법이 없다. 건전한 조직문화를 위해서는 공권력에 대한 엄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고 맹목적인 상명하복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 내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향후 권 과장의 경찰 내 입지는 경찰 조직문화의 리트머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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