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를 상대로 경찰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1부는 국가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 16개 시민단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경찰이 피해를 입은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인데 이 판결이 사회질서 유지라는 법정신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 시민단체는 그해 5월과 6월 서울광장 등에서 50여 차례에 걸쳐 격렬한 촛불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집회 진압과정에서 시위대가 경찰에 폭력을 행사하고 버스 등을 파손했다며 배상을 요구했다. 배상 요구액은 경찰인력 300여명의 치료비 2억4000여만원, 파손된 차량과 빼앗긴 통신ㆍ진압장비 수리비 등 2억7000여만원 등 모두 5억1000여만원이었다. 경찰로서는 당연히 손해배상을 받고, 불법집회가 줄어드는 계기가 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단이 달랐다. 법원은 “당시 수만명이 장기간에 걸쳐 집회와 시위에 참여했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시민단체들이 일부 법률을 위반한 집회와 시위를 주최했다는 사실 외에는 집회에 참여한 사람,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한 이와 이들 단체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버스가 파손된 장소와 경위에 대해 아무런 주장도, 증명도 없다”며 “피해와 손실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단체들의 민사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판결은 그러나 시민단체가 주도한 시위로 국가나 개인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인적 물적 피해를 누가 배상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남겼다. 법원은 피해와 손실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단체들의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손실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당시 경찰은 공무를 수행 중이었고, 경찰 차량도 피해를 봤다. 그럼에도 시민단체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촛불시위는 이명박정부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했다. 시민들의 불편도 컸고, 경찰 피해도 5억원이 넘었다. 경찰을 때린 사람이 불분명하다면 집회를 주도한 단체가 피해를 배상하는 게 맞다. 배고파 빵하나 슬쩍해도 처벌하면서 집회로 인해 공권력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물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