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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전두환 추징법 VS 김우중 추징법
김우중 이후 대우 계열사들이 선전한 결과지만 국가에 끼친 재정적 피해는 대부분 회복된 셈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김 전 회장 추징금에 법적 사면을 검토할 때 아닌가.


본란에 ‘全씨와 국민정서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 있다. ‘전두환 추징법’에 따라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던 9월 중순쯤이다.

통장잔고에 29만원밖에 없다며 16년을 버티다 가족이 사법처리될 처지가 되자 1672억원을 몽땅 내겠다며 백기를 들었다는 것, 이로써 법적 단죄는 마무리될지 모르나 헌법보다 더 세다는 ‘국민정서법’을 통과할지는 미지수라는 것 등등의 내용이었다.

각설하고, 김우중 전 대우 회장에 대한 추징금 문제가 이슈화되려 한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까지 추징금을 강제집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인데, 법무부가 지난 8월 입법예고를 한 데 이어 조만간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모양이다. 이름하여 ‘김우중 추징법’이다.

그러나 법 이전에 냉정하게 따져보자. 추징에만 집착해 둘을 동질인으로 착각한 건 아닌지 말이다. 김 전 회장을 포함해 8명의 대우 전 임원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18조원으로 한 해 나라살림 5%에 해당된다. 물론 나라 곳간이 간당간당해 지하경제까지 파고들며 세수확대에 애간장 태우는 정부로선 미납 추징금이야말로 꿀떡일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징금이라 해도 성격과 내용이 판이한데 같은 고깔을 덥석 씌우는 것은 누가 봐도 온당치 않다. 태생적으로 문제 있는 권력을 앞세워 권좌에 올라 천문학적 거액을 긁어모은 부정축재자와, 산업화 전선에 뛰어들어 ‘세계경영’을 기치로 한때 동유럽권을 휘젓다 졸지에 IMF 외환위기로 일순간 무너진 기업인이 같을 순 없다.

특히 주목할 것은 2005년 대우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 내용이다. 범죄로 인한 이득의 박탈을 목적으로 한 형법상의 몰수 및 추징과는 다른 ‘징벌적 추징금’이라고 못 박고 있다. 죄목도 외환관리법 위반이 주종이다. 부당이득 환수가 아니기에 환수를 전제로 내려진 판결이라기보다 교훈적 가치에 중점을 뒀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법이 현실화하면 김 전 회장과 동고동락해 온 임직원, 나아가 그 가족까지 낭패를 당할 처지가 된다.

대우 워크아웃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총 29조7000억원으로 회수 및 회수예상액이 30조원대를 넘는다고 한다. 김우중 이후 대우 계열사들이 선전한 결과지만 국가에 끼친 재정적 피해는 대부분 회복된 셈이다. 오히려 김 전 회장 추징금에 법적 사면을 검토할 때 아닌가.

더구나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 논란을 불러 온 베트남 골프장은 아들 선용 씨가 90년대 초 증여에 근거해 정상적으로 인수한 것으로, 증여세 등 관련 세금을 납부했고 해외투자신고도 마쳤으며, 수년 전 수차례에 걸쳐 검찰이나 국세청 조사에서 충분히 소명됐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추징금 영역 밖의 사안이다.

김 전 회장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과욕을 부리다 국가에 큰 부담을 안긴 것은 분명하다. 다만, 베짱이와 개미는 구별하자는 주장이다.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실패에 대한 지나친 단죄의식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 땅에 진정 용기 있는 기업 역군을 다시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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