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 한민족 이탈 심각
2세 교육 실종·가족 해체까지
역사 잊은 민족 장래성 없어
정부차원 전략적 대안 시급
대륙은 공간적 개념을 뛰어넘어 시간의 단위마저 바꿔놓는다. 압록강 하류 중국 단둥(丹東)에서 시작된 북간도 룽징(龍井)행 열차는 주야로 무려 21시간을 달렸다. 가을 장백산맥 허리를 헤집고 압록강을 따라 올라가는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계단식 고원지대, 누렇게 타오른 침엽수, 숲 속의 신사처럼 늘어선 자작나무 군락은 한 폭의 산수화다. 거친 원시림 사이사이로 내비치는 한옥 기와집과 그들의 월동 준비 모습은 국적은 달라도 여기가 한민족의 오랜 터전임을 실감 나게 했다. 다르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빛바랜 앨범을 보는 듯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흑백TV로 보는 그런 생활상이 더 강한 동질감을 불러오는 듯했다. 이를 확인이라도 해주듯 룽징을 비롯해 옌볜(延邊), 두먼(杜門)시의 간판은 온통 한자보다 한글 중심이고, 극심한 대륙성 기후와 일제 항전에 맞선 쓰라린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시간에 걸쳐 동북권 중앙으로 내려오는 만주벌판도 마찬가지다. 지린(吉林)을 거쳐 선양(瀋陽)~다롄(大連)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벌판을 내달리다 보면 한 줌의 옥수수로 끼니를 때우며 삶의 터전을 일구고 독립운동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던 선조들의 눈물겨운 개척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동북 3성은 이렇듯 우리 민족의 대륙 진출 및 고난사가 고스란히 서린 역사의 땅이다. 하지만 그 땅은 안타깝게도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나고 있다. 옌볜 등 조선족 자치주의 주인이던 한민족이 급격히 줄어들고 한족으로 치환되는, 심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것도 중국의 동북공정 전략 탓보다 한국과의 경제적인 연관성이 더 크게 작용, 북방 개척의 땅을 스스로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인 옌볜은 이미 한민족 비율이 43%대로 내려앉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글 간판이나 음식 등 우리 생활문화 역시 상실의 시대에 접어들어 껍데기만 살아 있을 뿐이다. 일자리와 돈벌이를 찾아 교민들(조선족)이 한국에 대거 입성, 공동화 현상이 빚어진 결과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민족 2세 양육과 교육이 더욱 엉망으로 변하고 있다. 부모가 돈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떠난 후 교육과 양육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몫이 됐고 여기에서 오는 세대 간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가족 해체 현상까지 곳곳에서 빚어진다. 최근 들어서는 위안화 강세에 따른 환율 변동조차 그들을 괴롭히는 요인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북방 개척의 현장인 동북 3성의 한민족 위치가 심각하게 약화되고 존재가 미약해지는 상황임에도, 우리의 전략적 대응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호구지책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북한의 대응을 기대하긴 이미 물 건너갔다. 역사성을 지닌 그 땅을 우리 선조가 어떻게 개척했으며, 어떤 과정에 처해 있는가 하는 교육이 전무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저 간간이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 의식만 일부 존재할 뿐, 젊은이 대부분이 그 땅을 잊고 있는 게 현실이며 심지어 우리와 무관한 중국 귀속지로 여길 정도다. 그 땅의 국적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동북 3성 개척 역사를 계승하고 존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수행여행이라도 대거 보내 그 땅을 밟아보고 한민족의 삶을 체험토록 해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식시켜야한다. 부의 흐름과 경제적 환경이 한민족 공백 상태를 초래했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도 마련돼야 한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통해 소비도시인 옌볜을 부품산업기지로 육성하는 것도 대안이다. 최근 동북 3성의 투자 유치 행사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등 분위기가 호전되고, 북한이 투자 유치를 위해 자본주의 개념을 적극 도입하는 상황을 활용할 만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장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모두 무시한 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