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병폐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1984년’과 ‘동물농장’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님 웨일스의 ‘중국의 붉은 별’,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과 더불어 세계 3대 르포문학으로 꼽힌다. 스페인 내전의 경험에 기초한 이 작품은 내전의 혼란과 가난, 혁명에 대한 희망과 좌절, 권력투쟁의 추악함과 환멸을 리얼하게 그렸다.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이의 성취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와 소통의 위기를 되새기며 이 책을 펼쳤다.
오웰이 의용대원으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는 혁명에 대한 희망이 충만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만족해했고 희망이 넘쳤다.…웨이터와 지배인들은 손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동등한 입장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굴종적인 말투와 격식을 차린 말투까지도 일시에 사라졌다”고 오웰은 묘사했다. 그는 희망을 갖고 전선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선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란 그 자체였다.
6개월 후 전선을 떠나 휴가 차 바르셀로나에 돌아왔을 때에는 상황이 최악으로 변해 있었다. 공산당과 무정부주의자의 연대가 깨진 틈을 타 프랑코 세력이 득세하면서 각 정파 사이의 음모와 비난, 추악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프랑코 세력이 정적 색출에 나섰다. 그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음모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꼭 음모에 가담한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카페 구석자리에서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누면서 혹시 옆에 앉은 사람이 경찰첩자가 아닌가 의심하는 일뿐인 것 같았다.” 민주주의가 파괴된 후의 끔찍한 상황은 작품 곳곳에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조지 오웰은 왜 의용군에 입대해 싸웠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위하여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공동의 품위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란 빈부와 인종, 나이, 성별, 신분, 사상의 차이를 떠나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고 존중받는 사회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정적이나 반대세력을 힘으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욕구를 갖기 쉽지만, 불편하더라도 설득하고 관용을 베푸는 게 민주주의의 기초다. 한시적인 권력자에게 불편하더라도 영속해야 하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평화주의자 겸 환경주의자로 인생 후반기 자연으로 돌아가 ‘조화로운 삶’을 실현한 스콧 니어링은 34세 때인 1917년 반전논문을 발표해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는 재판정에서 검찰이 혐의로 적시한 의무이행의 거부나 반란 등의 어떠한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자신에게 적용 가능한 범죄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는 사실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니어링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시민들에게 그들의 신념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권리는 올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올바르지 못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해준 (문화부장) hj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