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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이형석> ‘복고’와 ‘잉여’, 그리고 교황의 ‘묵시록’
또 다른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교황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복음의 기쁨’이란 글에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규정했다. 그는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면서, 절대다수와의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며 “시장과 금융투기에 완벽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이러한 불균형이 결국 자기만의 법과 규칙을 강제하는 독재체제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고립된 채로 안전만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 입고 더럽혀진 교회를 원한다”고도 했다.

‘시국미사’로 불거진 첨예한 논란과 이념 대립을 지켜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끔 하는 ‘말씀’이지만, 영화관객이라면 올해 개봉한 몇 편의 작품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다. ‘헝거게임’과 ‘설국열차’, ‘엘리시움’ 같은 작품들은 한결같이 극소수의 가진 자와 권력자들이 군림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피폐한 절대다수가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독재사회로 미래를 그렸다.

최근 국내 대중문화에선 ‘응답하라 1994’로 대표되는 ‘복고’열풍이 ‘트렌드’다. 시계가 1990년대 초중반에 맞춰져 있다. 지금 40대 전후의 이들이 대학을 다녔던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들이다. 극장에는 1980~1990년대 영화가 ‘재개봉’이라는 이름으로 걸려있다. TV에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나오고 때 아닌 ‘농구 대잔치’가 벌어지며, 극장에선 ‘라붐’에서 ‘시네마천국’ ‘터미네이터’ 등이 상영된다. 2013년이 맞나 싶다. 정치도 이에 발맞추는 듯 ‘내란음모’ ‘종북주의’ 논란 등으로 ‘응답하라 1994’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다.

40대의 감성이 ‘복고’라면 20대의 이름은 ‘잉여’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부르던 ‘잉여’가 드디어 한국영화에서도 시민권을 얻었다. ‘잉투기’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라는 한국영화가 상영 중이다. ‘잉여’라는 말을 조금 더 엄혹하게 해석하자면 “(경제에서) 배제된 이들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도 변방도 소외된 것도 아니다.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일부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착취를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쫓겼다. 버려져야 할 찌꺼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교황의 말대로일 것이다.

‘복고’의 주인공 40대가 이루는 가구는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전체의 74.2%가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다른 연령대를 압도했다. 빚을 제일 많이 지고 있는 세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고’가 혹시 팍팍한 생활을 위로하는 낭만적인 회고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반면 ‘잉여’라고 자조하는 20대는 최근 설문조사에서 학자금대출 등으로 1564만원의 빚을 진 채 사회에 진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입학생 중 70%가 강남 3구 출신이라는 통계를 보면 지금 40대의 자식들, 20대의 후배들이 맞닥뜨리는 세상은 나아지리라는 기대도 갖기 어렵다. 결국 모종의 제어가 없는 한 ‘복고’도 ‘잉여’도 영화에서 그리는 묵시록에서 만날 것이라는 현실인식, 바로 그것이 대중문화로 번역된 ‘교황의 근심’이 아닐까. 

이형석 (문화부 차장)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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