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 진전으로법조계 등 집단주의 문화 균열개인주의·평등주의 증대관료제 개혁도 병행돼야
산업화·민주화 진전으로법조계 등 집단주의 문화 균열
개인주의·평등주의 증대
관료제 개혁도 병행돼야
우리나라 국가 관료제에서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의 조직문화가 서서히 증대되고 있다. 본래는 집단주의와 위계주의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조직의 구성원들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직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해 왔다. 관료들은 소속 조직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그어져 있는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경계를 기준으로 내부적 응집성과 외부적 배타성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한국의 전통적인 조직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건들이 최근 들어 하나 둘씩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금년 가을 정기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검찰 간부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불거진 ‘항명 논란’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관료제 가운데에서도 특히 검찰은 집단주의와 위계주의 문화가 강하게 배태되어 있는 조직이다. 전국의 검사들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상명하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함으로써 검찰조직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검사동일체’ 원칙이 있었다. 이 규정이 2003년 12월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일부 폐지되었지만, 그 기본 규범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한 현직 검사가 일간지에 검찰 조사 잘 받는 법을 게재하다가 결국 법복을 벗은 경우나, 일부 판사들이 법관은 오로지 판결문을 통해서만 의견을 개진한다는 관습을 깨고 자신의 사견을 외부로 유출한 경우 등은 집단주의 행정문화에 대한 도전들이다. 모 대학의 헌법학 교수가 홈페이지에 자신의 은밀한 신체부위 사진을 올린 사건은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을 위한 일종의 전위적(avant-garde) 행동이었을 것이다.
행정관료들도 공무원단체 등을 결성하여 조직 내부의 관련 업무 수준을 넘는 사실상의 정치활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행정관료들이 조직의 방침을 벗어나는 개인 행동을 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사법관료들과 행정관료들 사이의 이와 같은 차이는 유인체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퇴직 후에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는 사법관료들이 그렇지 않은 행정관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여유가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에 출사(出仕)한 선비들이 당시의 국정 운영이 자신의 소신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고 사직하고 낙향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 초가삼간 가옥과 전답에 더해 서당에서 ‘아르바이트’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문화들은 각 나름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집단주의 조직문화가 지배적인 행정에서는 대개 정책의 추진력과 안정성이 높다. 반대로 개인주의 조직문화가 지배적인 행정에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창의성과 유연성이 창출될 수 있다. 관료 인사에 있어서도 각 문화 유형별로 부합성이 높은 제도들이 있다. 미국처럼 개인주의와 평등주의 문화가 지배적인 경우는 직위분류제가 제도화되었다. 반면에 집단주의와 위계주의가 지배적인 유럽 대륙이나 동아시아의 나라들에서는 계급제가 발달했다. 직위분류제의 경우 세분화된 소관 업무를 담당공무원이 책임지고 대부분 처리한다. 따라서 각 단위의 업무를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정책의 전반에 대한 시야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다단계의 상하 간 결제방식을 통해 합의와 통제를 추구하는 계급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단점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넓은 시각에서 정책을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더 진전되면서 행정 내부에서 집단주의 및 위계주의 조직문화가 점점 더 해체되는 반면에,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의 문화는 증대되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비례하여 각 조직문화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기 위한 관료제 개혁 또한 필요할 것이다.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