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헬기 추락·식품 오염 등
한국도 경제 비해 안전망 허술
사회안전은 국민 행복과 직결
시스템 구축·의식변화 병행을
안전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최근에 발생한 화재만 해도 구로동 신축공사장 화재, 제주물류창고 화재, 잠실나루역 화재, 안성시장 화재 등 이루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건에 이어 지난 11월 11일 발생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민간헬기 추락 사고는 어디에도 100% 안전한 곳이 없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비단 안전사고뿐이겠는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대량살상무기, 스모그, 화학물질 및 방사능 유출, 광우병, 신종플루, 식품오염, 인격장애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험요인이 이렇듯 일상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인류문명이 스스로 만들어 낸 위험들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사회를 ‘마치 화산 위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위험한 사회’라고 정의했는데, 한 마디로 개인적ㆍ사회적 위험요인이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울리히 벡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이제는 위험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화로 인하여 위험은 한 나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로 번져 지구 전체가 단일한 ‘위험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배기가스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증가시켜 전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고, 지구의 허파 아마존의 산림 훼손은 오존층의 파괴를 가져오고 있다.
울리히 벡의 경고처럼 산업화로 인해 각종 사고발생률이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사고, 산재사고, 어린이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과 장애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새로운 화이트칼라 직업병도 늘어나고 있다. 주요 위험요인 중의 하나인 교통사고를 예로 들면, 2012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447건, 하루 평균 611건이 발생하고 있고, 2010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발표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1.26명으로 32개국 중 가장 많다.
한편 사회관계가 복잡해지고 갈등요인이 증가하면서 가정폭력은 물론 우발적 폭행, 성폭행, 집단 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과거에 비해 경제적 상태는 좋아졌지만 사회안전은 취약해졌으며, 이것이 개인이나 가정의 위험요인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0년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에서 65세 사이 부부 10쌍 중 7쌍이 가정폭력을 경험했고, 자녀 10명 중 6명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수많은 아동들이 교내폭력과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데도 학교폭력은 아직도 근절될 기미가 없다.
울리히 벡이 한국사회의 이러한 현실을 목도한다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대뜸 위험사회로 단정할 것이다. 사회안전은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 및 행복 수준과 직결되어 있다. GDP(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15위, 무역규모 세계 10강의 경제강국 한국이 사회안전에 관한한 개발도상국들 앞에서도 얼굴을 들기가 민망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국민행복의 핵심적 요소인 사회안전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동체 구성원들도 안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사회안전은 시스템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전시스템의 구축과 개개인의 의식변화가 같이 갈 때 균형 잡힌 안전사회가 구현될 것이다.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경제 선진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전 선진국으로 가야한다.
문창진 (차의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