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대학 의대 입시에 문과 학생도 지원받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논란이 계속되는 문ㆍ이과 구분 운영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합에 대한 의견이 계속 나오는 것으로 보아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히 검토해야 하는 시기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
팔로 알토에 있는 제록스 기술연구소에서는 제법 오래 전부터 문화인류학자를 영입하여 여러 연구과제의 곳곳에 배치하여 활용했다. 이들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분석과 설문을 활용한 연구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를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만 해도 IT기업 연구소에 문화인류학자를 활용한다는 점이 의아하다고 여겨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앞서 갔던 행보라 하겠다. 이후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IBM, 휼렛패커드 등의 기업에서도 인류학자나 민속학자가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여 세계 각지의 문화적 환경 차이를 극복하는 제품의 개발에 적용했다.
이런 조직적인 융합의 사례를 넘어서는 예를 보여준 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다. 애플의 아이패드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가 선보여 주목을 끌었던 내용이 있다.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 엇갈려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교차로 표지판을 담은 슬라이드였다.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애플이 존재한다’라는 말을 덧붙여 애플이 추구하는 바를 간단히 설명했다. 이런 융합의 개념과 능력을 갖춘 CEO(최고경영자)가 보이는 파괴력은 애플이라는 기업을 통해서 익히 알게 된 바 있다.
금융업에 오랜 시간 몸담으며 금융업을 숫자로만 이해하는 직원들을 만나면 ‘우리가 사업을 영위하는 금융업은 숫자를 다루지만, 학문으로 치자면 수학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다’는 말을 해왔다. 숫자 자체로만 이해하게 되면 뻔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에 계산 이외의 사업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교통카드, 전자지갑이나 최근 많이 쓰이고 있는 기프티콘 등은 금융과 IT의 융합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더 나아가 미소금융, 햇살론, 희망홀씨 대출 같은 서민금융상품, 나라사랑카드, 아이사랑카드 같은 신용카드 상품,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 펀드 등 금융과 인문학의 융합 사례는 해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만큼 빠른 발전 속도를 보여왔고 이 시기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집중화가 효율의 척도였다. 그러나 융합(Convergence)의 시대에는 자신의 전공분야 이외에도 이에 육박하는 부전공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상식과 식견이 필요함은 자명한 일이다.
개인에게 이런 능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한 만큼 조직에서는 이런 인력의 육성과 더불어 전공 분야별 인력의 비중관리가 중요하다. 인력이 곧 회사의 힘이라고 믿는 필자로서는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 중 하나다. 곧 있을 신입사원 채용이 머리 아픈 희망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황 록 (우리파이낸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