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선언이 종교의 정치개입 문제로 번져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의 사퇴, NLL 문제, 천안함, 연평도 폭침 등 민감한 문제까지 건드려 불교, 개신교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논쟁은 확대되고 있다.
종교가 정치 문제에 얼마 만큼 개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근대 국가는 종교를 포함한 모든 제도를 내키지 않는 협상(reluctant bargain)에 따라 법에 종속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종교도 공동선 구현을 겨냥한 법 테두리 안에서 그 활동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런 원론적인 합의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적용 범위나 방향에 대해선 십인십색이다.
종교는 궁극적인 진리를 찾고 이를 전파하고 이를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독려하는 일을 맡고 있다, 양심에 따라 사회에 참여하고 모든 것을 절대적인 진리를 축으로 재단하고 판단하도록 앞장서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원론적이고 기초가 됨직한 기준이나 방향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독려하는 것이 종교의 몫이다. 총론적이다. 반면 정치는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립, 갈등, 분쟁을 조절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행위이다. 통일적인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내 생각, 내 이념, 내 정책을 축으로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선 시공을 초월한 원칙이나 불변하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정략적인 이익으로 사안이 재단된다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따라서 정치는 각론에 속한다.
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의 최근 활동이 정치개입인지 아니면 사회참여인지의 논란의 근저에는 총론과 각론의 충돌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70년대와 80년대 정의구현사제단은 이 나라 민주화를 정착시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엔 사회적인 분쟁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특정 정파나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한ㆍ미 FTA 반대,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등 찬반이 엇갈리는 현안에 대해 한쪽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여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종교인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은 기본권에 속한다. 문제는 실타래같이 뒤엉킨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흑백논리로 단순화시키고 이를 종교의 예식같이 포장하는 방법이 옳은 일인지, 시저(Caesar)의 것을 하느님 것으로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제들의 주장이 과연 사랑과 관용과 화합을 바탕으로 한 공동선 구축에 보탬이 되느냐를 따져 보는 일이다.
갈등과 부조화는 인간 삶에서 빼낼 수 없는 요소이고 또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옳다고 해도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해결은 커녕 문제는 꼬여만 간다. 그러나 모두가 참여하여 머리를 맞대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네거리에서 신호등으로 교통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또 모두가 한 공간에 들어와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빠지는 로터리도 좋은 통행 방식이다. 사랑, 관용, 호혜의 로터리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종교의 정치참여 방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