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힘 보여준 만델라
대연정 타협 이룬 메르켈
한국 정치인은 갈등만 조장
먼저 양보하는게 진정한 승자
우리는 얼마 전 인류가 존경하는 넬슨 만델라라는 지도자를 보냈다. 그는 350년간 백인들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받은 국민 앞에 용서와 화해라는 말을 던졌다. “여러 색깔로 이루어진 무지개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화해해야만 한다.” 분노한 군중 앞에 던진 이 메시지를 몸소 하나하나 실천함으로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 유혈 참극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영혼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용서의 힘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보았다.
우리는 또 다른 지도자를 본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했음에도 야당 사민당과 17시간 밤샘 토론 끝에 대연정의 타협을 이뤄냈다. 야당 당사를 찾아가 연금과 대체에너지, 증세와 복지에 관해 서로 조금씩 주고 받은 결과이다. 세계는 이를 두고 야당이 아니라 강한 인내와 유연함을 갖춘 메르켈의 승리라고 말한다. 독일이 유럽에서 나홀로 성장하는 비결을 바로 이 타협정신에서 찾는다.
우리는 어떤가? 증오와 혐오, 저주가 온나라를 덮고 있다. 최근 며칠 언론과 SNS에 많이 오른 단어를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고려 없다” “엄단” “강력 대처”를, 여당 인사들은 “뻔뻔하고 민망” “제명”과 같은 직설적인 발언들을 상대방에 쏟아냈다. 야당이나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 “이대로는 못 살아 박근혜 OUT” 같은 끝장 보자는 말들을 거침없이 했다.
우리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치지도자들의 불관용, 비타협, 오만과 독선이 이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사회적 갈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갈등지수는 2010년 OECD 27개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사회갈등은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의 정책수행 능력으로 결정되는데 우리의 갈등은 극단화ㆍ장기화되고 있고 날로 더 심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82조원에서 24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이 완화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갈등을 완화하고 조정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확대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난이 있을 때마다 분열의 정치가 나라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일제 식민지와 국토 분단에까지 이른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와 암담한 청년실업, 붕괴되어 가는 자영업의 위기 속에서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국민을 외면한 채 정치는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정기국회 3개월 동안 법안 한 건도 처리하지 않았다는 뉴스에 절망한다. 그리고 가까스로 합의해서 국회가 예산심의에 들어갔지만 언제 중단할지 모른다. 국정원 개혁특위와 특검에 대해 여야는 얼굴만 마주 볼 뿐 생각은 판이하게 다르다. 국회는 언제 파탄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지금까지 어렵게 피땀 흘려 만든 오늘의 대한민국마저 불관용, 비타협의 소인배 정치 때문에 흔들리는 게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승자는 패자에 대해 포용이 없고 패자는 승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의 무능한 정치가 잃어버린 20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은 저력이 있는 나라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초체력이 약하다. 심각한 국제정세와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무능한 정치가 다시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이에 답해야 한다.
만델라를 보내면서 판에 박힌 조의를 보내는 일보다 국가와 국민 앞에 먼저 양보하고 머리를 숙이는 게 진정 승자가 되는 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한국의 정치인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정장선 (前국회의원, 헤럴드경제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