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복불복(福不福)이다. 회의일정이 잡혀서 왔지만, 회의가 열릴 지는 모른다. 의원님들이 뿔나면 회의 따위는 예사로 연기되고 취소되기 때문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대신한 의원님들 앞에서는 장ㆍ차관들도 그저 ‘공복(公僕)’일 뿐이다. 국민이 직접 뽑은 사람이라면서 ‘마름’ 노릇 톡톡히 하는 모습이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장.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예산 심사 받겠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정시간인 11시가 지나도 의원들이 입장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의 안보교육 예산을 두고 여야가 충돌해 야당 의원들이 회의 불참을 선언한 탓이다. 여야 의원들의 티격태격으로 예정에서 한 시간 쯤 지난 정오에야 오후 3시30분에 회의가 연다는 통보가 이뤄졌다. 하지만 정작 회의가 열린시간은 4시40분이다. 그리고 예산안과 기금안 등 수 십 조원에 달하는 이날 안건은 단 2분만에, 그것도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2분’을 위해 수 십명의 공무원이 한나절을 허송한 셈이다.
보통 장관이 자리를 비우면, 결재며 회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조직의 특성상 수장이 자리를 비우면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ㆍ차관들이 국회에 와 있으면 소관부처의 의사결정도 그 시간 동안은 이뤄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건 당연하다. 그런데 불러다 마냥 기다리게 하고, 왜 왔는 지 조차 의심하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종 부리는’게 아니라 ‘○개 훈련시키는’ 것에 가깝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해 결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무턱대고 회의만 잡을 게 아니라 ‘물밑 협상’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게 정치의 기술이다. 무턱대고 회의 잡아놓고 물밑협상 잘 안됐다고 ‘회의 불참’ 카드를 남발하는 것은 투정만도 못해 보인다. 투정부리는 이유도 대부분 자잘한 정쟁이다. 그나마 결론이라도 좋으면 다행인데, 늘 끝은 ‘벼락치기’다. 어차피 제대로 하지도, 할 것도 아니면서 거들먹거린 모양새다. 알고 보면 얼뜨기인데.
여야가 100일간의 정기국회 기간 동안 처리한 법안은 겨우 34건이다. 그나마도 99일간 처리실적 ‘0건’이다가 마지막 하루에 올린 실적이다. 주인이 기한을 주고 마름에 일을 시켰더니 허송세월하다가, 겨우 마지막 날 일하는 시늉 몇번하고 기한 더 달라는 셈이다. 이쯤되면 주인까지 우습게 보는 셈이다.
의원님들 눈에는 예산달라고, 법안 통과시켜달라고 굽신거리는 장ㆍ차관들이 우습게 보일 지 모르지만, 이들이 머리를 숙이는 대상은 금뱃지가 아니라 그 뱃지를 달아준 국민이다. 주인 들먹이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마름에게는 치도곤이 당연하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