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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만델라 추도식을 보며…
민주화의 화신, 넬슨 만델라의 마지막 모습이 찡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100여명의 전ㆍ현직 국가지도자를 비롯해 6만여명의 조문객이 운집한 가운데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기의 추도식은 그야말로 한바탕 축제의 장이었다.

15일 고향땅 쿠누에서 영면에 들게 될 만델라, 그가 남긴 마지막 가르침도 역시 용서와 화해였다. 모든 종교와 인종이 한데 어울려 영혼의 노래를 합창하고 화합의 춤을 춘다. 거기엔 그 어떤 원한도 없다. 상종도 않던 당대 최강 앙숙들을 일거에 한곳에 불러 앉힌 만델라의 저력이 참으로 놀랍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는 소개를 받고 연단에 나서려던 오바마가 라울에게 불쑥 악수를 청했다. 역사적인 사건이다. 라울의 형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집권한 1959년 이래 쿠바는 미국에 눈엣가시이자 급소다.

#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영국의 식민지배 구원(舊怨)으로 철저한 적대관계다. 최근 무가베 대통령의 백인 재산동결로 둘 사이는 더 사나워졌다.

# 프라나브 무케르지 인도 대통령과 맘눈 후사인 파키스탄 대통령. 20세기에만 세 번의 전쟁도 모자라 핵무기를 앞세워 국경분쟁 중이다.

#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정적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지난해 대선 이후 대립각을 세웠고, 대통령전용기 동승을 단호하게 거절한 사르코지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 본 이들 역시 당대 최고 거물들이다. 지미 카터ㆍ조지 W 부시ㆍ빌 클린턴 등 미국 전직 대통령, 존 메이저ㆍ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기부천사’ 빌 게이츠, 미국 인기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패션모델 나오미 캠벨 등등.

그런데 이상하다. 온통 서방 일색이다. 아시아 쪽은 아예 카메라 앵글 밖이다. 왜 그럴까. 이 대목에서 ‘미국의 힘’과 ‘유럽다움’을 떠올리면 생뚱맞은가. 무조건적 애국과 효도, 절대권위와 복종의 정서로 알부자가 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대신 이제는 ‘아시아적 한계’가 현실화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시아권에서 진정한 만델라 정신을 찾기가 쉽지 않다. G2 중국은 인권이, G3 일본은 과거사가 우선 업보다. 동남아 일대는 내전과 폭력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북한은 핵 책동으로 공공의 적이 된 데다 김정은 유일지배를 위해 2인자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피바람이 일고 있다.

살짝 낯간지럽긴 하지만 그나마 부합하는 곳이 한국이다. 정치나 남북관계에서나 의미가 남다르다. 물론 진흙탕인 현실정치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대통령이 자신 있게 직접 조문에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제2의 만델라가 나올 수 없기에 이런 용서와 화해의 추도식도 다시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 여기서 한 장면 추가. 조문 간 정홍원 총리가 VIP석 난관을 잡고 아래층으로 고개를 내밀어 뭔가를 찾는 듯하는 스틸사진 하나. 마치 앙숙이라도 찾으려는 것처럼. 뒷맛이 씁쓸하다.

황해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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