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과목은 반에서 1등이었는데, 국어만 늘 빵점이어서, 오늘날 어른이 되어도 말 귀를 못 알아 먹을까. 논리학과 사회학을 못 배워서, 문제가 생겨도 고칠 줄 모르고 소통은 커녕 “내 잘났다, 네 탓이다” 서로 고함만 지르는 걸까.
우리 사회 지도층의 10~20대 학창시절 성적표가 이렇게 ‘안녕하지 않은 상태’일 리 없다. 대부분 모든 과목에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받았을 테고,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해도 말 귀를 못 알아 듣거나, 인간 구실 제대로 못할 것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배움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의 청소년들처럼 순수의 꿈을 키웠을테고, 이번 학기 수학 좀 못했으면 다음 학기엔 좀 더 노력했을 것이며, 도덕을 못했다면 교과서 내용을 집중적으로 음미해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수학을 배우면서 공식과 기준에 따라 올바른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한 논리적 절차를 밟아 나가는 방법을 익히고, 도덕 수업을 들으면서 이웃집 물건을 훔치면 감옥에 가서 죄값을 치른다는 원칙도 알게 됐을 것이다.
▶영화 ‘내 청춘에 고함’ 포스터. |
우리는 배웠고,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여기에 서 있다. 나누고 도우면 사랑과 평화이고, 나누고 돕는 척 하면 위선과 사기이며, 아예 나누거나 돕지도 않고 내 것만 챙기느라 남을 해코지하면 탐욕과 갈취라는 사실도 배웠다. 사랑 주면 사랑받고, 위선 떨면 도덕적으로 지탄 받으며, 반칙하면서 자기 것 더 챙기면 쇠고랑을 찬다는 실정법도 익혔다.
“길 건널 때 좌우 잘 살펴라. 전에 거기서 교통사고 난 것 봤단다”라고 주의를 받으면, 그 말 뜻이 위험지역 사고 예방 당부로구나 라고 알아들었지, ‘내게 교통사고 당하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문자 해독 능력도 충분히 익혔던 것이다.
“선생님, 그 아이가 반장될 때 걔네 엄마가 반 애들한테 피자 돌렸어요. 사회교과서 65쪽에 나오는 공정한 선거 아니잖아요”라는 말에 선생님이 “너 나한테 대드니? 선생님한테 대들면 교칙상 어떻게 되는지 알지? 혼 나!”라고 반응했다면 그 교사에겐 난청(難聽)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숱한 서정시를 감상하면서, 그 속의 시어를 음미하면서, 논리적인 글 말고도 아름다운 낱말과 시구는 인간을 감성적으로 이완, 정화시켜 결국 논설문 보다 더욱 강하게 사람을 설득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아가 인간의 이성 못지않게 감성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도 느끼게 된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나라마다 민족마다 차이가 있음을 배우고 저마다의 개별성과 독특성을 존중해주는 ‘문화적 상대주의’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술을 배울때는 또 어떤가. 사진처럼 똑 같이 그리는 것이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인줄 알았다가 빛의 양에 따라 사물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빛이라는 변수로 사물의 느낌을 달리 표현했고,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화폭에 담으려는 노력에 이어 대상물의 외양은 물론 내면까지 표현하려고 숱한 시도가 있었다는 ‘미학’의 발전과정과 ‘아름다움을 찾는 여러 갈래의 길’을 알게 됐다. 지금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까지 배운 것이다.
▶영화 ‘내 청춘에 고함’ 포스터. |
사회지도층은 청소년 시절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했으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 중 상당수는 그때 배운대로 하지 않고 있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세평이 매섭다. 연일 도마에 오르는 수많은 부조리와 반칙을 보라. 상식의 붕괴, 도덕 불감증, 폭력의 미화, 범죄자의 부활이 무섭다. 약속 불이행의 방치, 무력 앞의 비굴, 속수무책의 외교, ‘민주’라는 수식어를 떼낸 숫자만의 경제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우리의 사회지도층은 성실하고 좋은 청년이었던 스무살 자신의 가슴에, 거칠어진 2013년의 손을 조심스럽게 얹어보자. 손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지지 않는가.
내 자녀가 세월이 지날수록 교과서 내용과 점점 멀어져 끝내 배운 것의 반대 모습으로 치닫고, 지금의 나보다 더 심각한 모습의 몬스터가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와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럽지 않은가. 때마침 뒤돌아 보기 좋은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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