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 되면 강원도 산골에는 빈집이 부쩍 늘어난다. 봄, 여름, 가을 등 3색 전원생활을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겨울 혹한과 강풍, 폭설이 닥치기 전에 다시 도시(아파트)로 빠져나간다. 주인 없이 덩그러니 버려진 채 떨고 있는 산골 둥지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전원 엑소더스(탈출)는 11월부터 시작된다. 도시와 전원에 따로 집을 두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사람들, 요양 온 환자와 가족들, 심지어 전원에 눌러앉은 지 오래된 이들 중 일부도 한 겨울에는 도시로 나갔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론 전원의 겨울은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혹독하다. 필자 가족이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의 산골마을은 지난 2011년 1월 한 달 내내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를 맴돌았다. 2011년, 2012년 각각 최저 영하 27도까지 내려갔던 초강력 한파는 급기야 2013년 1월에는 영하 29도를 기록했다. 이번 겨울, 과연 영하 30도를 돌파할 것인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처럼 전원의 겨울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다. 하지만 기나긴 동면과 침묵, 인내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쉼과 느림,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안식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전원의 겨울이야말로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봄, 여름, 가을보다 오히려 자연의 소리, 하늘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있는 즐거움도 맛보고, 바람과 눈을 벗 삼아 독서삼매경에도 빠져본다. 폭설이 내리면 산속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고라니, 너구리, 꿩과 참새 등은 항상 만나게 되는 자연의 친구다.
모든 게 정지된 듯 보이는 숲과 들에도 조용한 생명의 움직임은 있다. 귀한 약재로 대접받는 겨우살이는 한겨울에도 참나무 등에 붙어 살아간다. 작물 가운데 마늘, 호밀, 보리 등은 흰눈을 뒤집어 쓴 채 파릇파릇한 생명력을 뽐낸다. 인고의 과정을 통해 새 봄, 새 삶을 묵묵히 준비하는 이런 뭇 생명들을 대하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인생의 연단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된다.
전원의 겨울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장장 5개월이나 된다. 도시인의 로망인 전원생활에서 사실상 겨울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것이다. 겨울을 빼놓고선 온전한 전원생활을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이 겨울을 기피하지 말고 즐겨야 비로소 전원의 사계절은 완성된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21만명) 은퇴자를 비롯한 많은 도시인들이 새로운 인생2막을 위해 속속 전원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귀농·귀촌인은 무려 4만7322명에 달했다. ‘100세 시대’에 50대 중반 이후 은퇴한 도시인들이 맞이하는 인생의 계절은 전원의 겨울나기 과정과 많은 점에서 닮은 것 같다. 인생2막의 장으로 전원을 선택했다면 기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즐길 때 인생의 사계절 또한 멋지게 완성되지 않을까!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