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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타임 슬립
현실이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필름을 천천히 되돌려 가다 보면 결정적 사건이라 여겨지는 때에 닿는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랐을까?

40살의 까밀은 별 볼일 없는 영화 단역배우에 알콜중독자다. 남편마저 스무살짜리 여자애와 바람나 떠나버리자 까밀의 삶은 무너져내린다. 암담한 어느 새해맞이 축하 파티에서 까밀은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 보니 16살 시절로 돌아가 있다. 과거의 단짝친구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첫사랑이자 남편 에릭을 다시 만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까밀은 다른 선택을 하려 애쓴다. 그러다 결국 깨닫는다. 남편과의 모든 것이 소중하며 다른 선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영화 ‘까밀 리와인드’얘기다. ‘과거의 나’를 바꿀 수 없다면 ‘미래의 내’가 해 주는 조언을 따라보자.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미래의 선택’은 현재의 불행이 과거 잘못된 선택에 있다고 본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끌어간다.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내 얘기를 잔소리로 여기지만 그래도 귀 기울여 그 잘못된 선택을 비껴간다. 그러나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될 수 없다. 다른 선택을 한 나는 지금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타임 슬립(Time-slip) 테마가 유행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미끄러지듯 오가는 이 시간여행의 원조는 미국의 SF 거장 필립 K.딕이다. 그의 1964년작 소설 ‘화성의 타임 슬립’은 1994년 식민지 화성이 배경이다. 인구 증가와 환경 오염으로 지구를 떠난 이들의 상당수는 자폐증으로 현실과 내적 자아의 시간차에 따른 시간 왜곡을 경험한다.


타임 슬립의 욕망은 언뜻 현실회피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을 바꾸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문화코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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