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2013 본지선정 올해의 키워드
‘100% 대한민국’ 출발했지만소통부재로 사회 병목현상 극심
이념·세대·빈부간 갈등 확산
서로 소통하고 대안에 합의하며
내년엔 ‘통쾌한’ 대한민국 되길…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분통(憤痛)하다. 통탄(痛歎)한다. 진통제(鎭痛劑)는 없었다. 덧난 상처에 소금만 뿌려졌다. 고통(苦痛)에 진저리쳤다. 통각결여(痛覺缺如), 정치에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어 아파도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졌다.
헤럴드경제는 2013년 올해의 키워드로 통(痛)을 선정했다. 통할 통(通), 아플 통(痛) 두 자가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소통부재에 따른 병목현상과 사회정체가 결국 한 해를 마무리하는 즈음, 아픔으로 남았다. 뱀이 허물을 벗는 성장통이 아니었다. 이념ㆍ세대ㆍ빈부 간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킨 만성통증이다.
박근혜정부는 ‘100%대한민국’을 모토로 희망차게 출발했다. 전 정권의 불통과 오만ㆍ독선ㆍ정치실종 시대의 종언, 공존 공생의 상생 경제, 사회적 대타협을 열망했다. ‘누구한테도 신세지지 않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부패와 편법이 판을 치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회복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소통에 서툴렀다. 국정지지도는 높지만, 소통은 낙제점을 받았다. 국론은 통합되지 못하고 ‘자랑스러운 불통’과 ‘말이 안통하네트’ 그 중간에서 갈라섰다.
국회와 사회 제세력은 애써 상대방을 외면했다. 심각한 편두통을 방치했다. 정치는 서해북방한계선(NLL),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의혹에 걸려 고비 때마다 고꾸라졌다. 똑같은 텍스트를 읽고 입맛대로 해석하고 자기들끼리 통분(痛憤)했다. 갈등을 치유해야 할 정치는 외눈박이로 자기들 주장만 늘어놓았다. 상대방은 종북(從北)이거나 종박(從朴)이었다.
글로벌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각종 규제를 풀고 경제활성화 법안을 제발 처리해 달라고 여의도 국회를 찾아갔던 경제단체장들은 문전박대 당했다. 민생을 입에 달고 다니던 국회의 배신에 울분을 삭히느라 국민은 독한 술로 통음(痛飮)을 해야 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 등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판을 쳤다. 밀양송전탑 건설, 수서발 KTX자회사 분리가 빌미가 된 철도노조 파업 등 타협하지 않고 극한 대결만 벌였다.
깊어진 불신에 통성(痛聲)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고, 미래를 생각하면 초조하고 우울해서, 강팍한 성질부터 내는 ‘울화통(鬱火痛)’에 걸렸다.
사회가 정체현상을 빚으면서 민심은 송곳처럼 날카롭고 공격적인 감성으로 표출됐다. 남양유업사태는 갑의 횡포로, 라면상무ㆍ빵회장에게는 절대 권력자로 감정이입하면서 착취ㆍ권력남용의 대명사처럼 돌직구를 날렸다. 취업난으로 인해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삼포(三抛)세대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비꼬아 공격하는 ‘디스( disrespect의 줄임말)에 열광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야왕’ ‘구가의 서’처럼 독하고 센 악역이 인기를 끌었다. “죽여버릴거야”는 유행어가 됐다. 통증을 더 큰 통증으로 마비시키려는 듯 욕하면서 봤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해외환경의 악재 속에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 사상 최대 수출, 최대 무역 흑자까지 경신하며 빛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29만원밖에 없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징하는 등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엄벌 분위기도 조성됐다. 박 대통령도 새해 기자회견을 하는 등 본격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탈출구 없이 폭주하는 설국열차를 타고 달려온 2013년이 저물어간다. 새해에는 일자리를 나누고, 상대의 의견을 듣고, 대안에 합의하는 대한민국. 말단 모세혈관까지 피가 팽팽 돌아 ‘불통의 한국병’을 치유되길 기대한다. 유쾌, 상쾌한 대한민국을 넘어 통쾌(痛快)한 대한민국을 향해서.
정덕상 정치부장/jpur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