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4는 시작할 때만 해도 재미가 덜했다. 너무 신중하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말로 연애하는 느낌이었고, 간이 덜된 국물을 먹는 기분이었다. 보면서 “뭘 저렇게 다각도로 따지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아니었다. 마라탕을 원한 나의 잘못이었다. 이들 젊은 남녀 8명은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경쟁자지만, 서로 배려할 줄 아는 페어플레이를 펼쳤다. 휘젓고 다니는 미꾸라지 멤버는 한 명도 없었다. 판을 좀 흔들어달라고 중간에 투입하는 메기도 사실은 메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비호감이나 밉상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겨레-지영, 민규-이수의 최종 커플탄생에 대해서도 모두 축하해줄 수 있었다. 사랑을 찾아나선 공간에서 “역대급 우정”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트시그널4’는 죽었던 연애세포를 살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연애세포를 성장시켜 어른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는 충분히 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았다. 이건 어려운 거다. 최종 선택에서 지원은 지영에게 전화해 “좋아해”라고 말하고, 주미는 겨레를 택해놓고는 “나를 꼭 선택해줘”가 아닌, “후회없는 선택을 하라”고 한다. 지원과 주미는 연결이 안될줄 알고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
‘눈치 빠른 여자’ 주미는 겨레에게 “오빠가 지영이 정리됐다고, 그 얘기 들으면서 하나도 안믿었거든. 근데 강한 긍정은 부정인 것 알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후신이 최종선택에서 지영에게 전화해 “너가 해준 게 많아”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김이나는 “내 마음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다. 짝사랑의 값진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지원, 후신과 주미는 그런 선택으로 더 멋있는 남자와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지원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지영에게 보냈고, 이를 읽은 지영은 “지원이 힘들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울고, 기꺼이 답장까지 보내 지원을 울렸다. 이 모든 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믿고싶다.
민규와 지영은 왜 연결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민규-지영은 왠지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민규-지영 파들도 많았다. 이들이 연결되지 못한 과정을 보면 ‘하트시그널4’만의 특성이 확실히 부각된다. 두 사람의 최종 데이트에는 유독 겨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마지막 기회니까 좀 더 흔들어보자”가 아닌, 끝까지 신중한 민규를 알 수 있게 했다.
“지영이랑 시간 보내면 좋아질 것 같았어. 그걸 내가 막았던 것 같아. 그때부터 모든 게 정해져서 마음이 커지는 걸 무서워했던 것 같아”(민규)
“오빠(민규)가 나랑 행복하길 바라지 않아. 오빠가 그냥 행복하길 바래”(지영)
이 때는 지영이 이미 겨레에게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민규에게 “오빠는 나한테 한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나는 왜 오빠에게 마음이 갔을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헤어진다.
최종선택 직전 10분간 대화시간에도 민규와 지영의 대화는 아쉬움과 회한과 함께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듯했다.
“오빠(민규)의 여러 면을 좋아했던 것 같고. 부담스러워할까봐 걱정도 했어. 혹시나 티가 날까봐. 그래서 서로 편하지 못했던 것 같다”(지영)
“그 (지영의) 예쁜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좋은 감정인데 내가 서툴게 다룬 것 같아 미안해”(민규)
민규-지영의 관계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김총기 등의 예측단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두려움과 분노, 이 두가지밖에 없다. 민규는 두려움이다. 내성적이고 사람 앞에 나서는 걸 꺼렸던, 그런 성격을 극복하고 싶었다. 지민을 만나면서 직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민규는 자신이 극복했다고 생각한 두려움이 확 다시 밀려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영이에게 생기는 호감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 이수가 나타났다. 이수는 선명하다. 두려움이 없다”고 해석했다.
민규는 한달간 룸메이트였던 겨레형을 너무 좋아했다. “항상 형(겨레)이 거기 있어 좋았다. 항상 돌아갈 곳이 형 덕분에 있어서. 형이랑 지낸 시간은 못잊을 것 같다.” 낯선 환경속 유일한 위로가 된 룸메이트였다. 최종식사에서 민규는 겨레형 손을 덥썩 잡기도 했다. 이건 그냥 좋은 형 정도가 아니다.
‘묵묵히 지영만을 바라보고 있는 뚝심의 겨레 형이냐, 좋아하지만 표현을 많이 못한 지영이냐’ 민규에게 이것이 양자택일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런 것이 작용한 것도 지영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요인이 됐을 거라고 본다. 민규는 사랑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겨레 형을 잃고싶지도 않았다.(앞으로 지영-겨레 커플과 함께 만날 때는 약간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민규가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이들의 우정은 지속될 듯 하다)
‘하트시그널4’는 이런 엇갈림속에서도 어느 누구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중반까지도 너무 페어플레이를 펼쳐 아쉬움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하트시그널4’만의 서사구조를 완성하며 차별화된 색깔을 보여주었다. 개인플레이를 중시하면서도 좋은 팀플레이 느낌도 났다.
드라마도 이렇게 잔잔한 로맨스물은 각인시키기가 쉽지 않다. 울고 불고 던지고. 그런 역할을 하는 막장적 빌런이 한 명 정도 나와줘야 시청률이 올라가곤 했다. 하지만 데이팅 리얼리티 ‘하트시그널4’는 조용한 가운데서도 솔직하게 생겨나는 감정 위주로 진행됐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 섬세함을 좀 더 신경을 쓰면서 봐야했다.
유이수도 중간에 투입됐지만, 차분하게 감정을 잘 전하며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사랑의 위너’까지 됐다. 이수는 민규와 함께 있으면 표정부터가 달라진다. 하트뿅뿅이다.
또한, 일관성 있게, 깨끗하게, 참을성 있게, 묵묵히 지영에게 향한 마음을 끝까지 보여주었던 겨레의 방식이 통했을 때에는 “해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았던가. 겨레와 지영의 커플 탄생은 값지게 느껴졌고,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겨레가 지영을 껴안을 때는 울컥할 정도였다. 이들 뿐만 아니라 출연자 8명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매너를 지키면서 성숙한 사랑의 감정을 보여줘 “홍학해”라는 말을 들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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