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 큰 틀에 상상력 가미
[CJ ENM 제공] |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여기에 시퍼렇게 어린 애들의 인생이 달려 있습니다.”
전북 완주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황준철 수사 반장(설경구 분)은 수사가 끝난 지 1년이 넘은 강도살인 사건을 우연히 접했다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 3명이 사실은 무고하게 잡힌 듯한 느낌을 받은 것. 이에 황 반장은 진범들을 찾아내 경찰 조사까지 추진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예전에 사건을 졸속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이 황 반장의 수사를 계속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후 황 반장은 좌천되고, 소년들은 ‘살인범’이란 주홍글씨와 함께 힘겹게 살아간다.
영화 ‘소년들’은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발생한 ‘나라슈퍼’ 강도살인 사건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과 ‘블랙머니’ 등 주로 실화 중심의 영화를 내놓은 정지영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나라슈퍼’ 사건의 진범 3명은 가게와 연결된 집에서 자고 있던 가족 3명의 눈과 입을 테이프로 가리고 금품을 빼앗았다. 피해자 중 할머니는 입을 막은 테이프 때문에 질식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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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건 직후 19∼20세 남성 세 명을 구속시켰는데, 이들은 진범이 아니었다. 모두 경찰의 폭행과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한 것. 이들은 이후 만기 출소한 뒤 재심 청구에 나섰고, 결국 사건 발생 17년여 만인 지난 2016년 살인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재심 전문가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이 컸다.
정 감독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 지나가는데 이 사건 만큼은 그렇게 지나가선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사건 과정에서 우린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묵시적으로 동조한 건 아닌지 들여다보는 의미에서 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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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황 반장과 세 소년의 살인 누명을 주도한 경찰 간부 최우성(유준상 분)의 대립 구도로 전개된다. 이는 곧 힘 있는 권력 기관의 치밀한 조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힘 없는 약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살인 누명을 겨우 벗었지만, 범죄 조작을 주도했던 수사 담당자나 간부 가운데 실제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의 큰 틀은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영화적 전개엔 상상력이 많이 가미됐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황 반장 캐릭터는 여러 실존 인물들을 합쳐 만들었고, 재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변호사의 역할은 황 반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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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영화의 재미와 심각성 등을 위해 극적 장치를 만들기 때문에 실화 그대로 영화를 만들면 황 반장 같은 캐릭터가 나올 수 없다”며 “영화는 한 사람이 끌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황 반장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건의 뼈대를 왜곡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1999년, 황 반장이 재수사에 뛰어드는 2000년, 그리고 그가 좌천된 이후 재심 과정인 2016년을 교차 편집해 꽤나 집중을 요한다.
11월 1일 개봉. 123분. 15세 관람가.
ren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