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은 멋진 악당이 아니다
부끄러운 역사 되새겨볼 계기
김성수 감독이 최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서울의 봄’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 |
“겁이 났어요. 시나리오는 굉장히 좋았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인 군사반란 세력이 멋진 악당처럼 묘사되지 않을까 걱정했죠. 그래서 (제작사 측에) 자신 없다고 말했는데 받는 순간부터 그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흥분 상태가 계속됐죠. 연출을 결심하는데 1년 정도 걸렸어요.”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울의 봄’의 김성수(사진) 감독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영화 연출의 제의를 받았을 때의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무력을 총동원해 군을 불법적으로 장악한 군사 반란의 9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김 감독이 영화 ‘아수라’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제 인생의 수수께끼였어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고, 권력이 어떻게 한 순간에 빼앗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요. 나중에 30대 중반에 감독으로 데뷔할 무렵에서야 사건의 윤곽은 알았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의 내부 이야기는 안 나오더라고요. 사료를 바탕으로 제 생각대로 그 사람들의 그날 밤을 재현해보고 싶었어요.”
영화는 하나회 중심으로 군사 반란을 주도하는 전두광(황정민 분)과 이를 진압하려는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분)의 대립이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이태신은 끝까지 반란 세력에 대항하는 몇 안 되는 군인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큰 틀로 뒀지만, 영화적인 허구가 가미됐다.
“반란 세력을 역으로 비추는 거울로서 당시 신념을 지킨 진짜 군인을 부각해 반란 세력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소 삶의 원칙을 가지고 산 사람들은 일이 순식간에 벌어질 때 자기 판단으로 전 생애에 답한다고 생각해요. 그 분들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한 거죠. 당시에 진짜 군인 분들이 있었다는 걸 지금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지만, 등장인물 이름은 실명 대신 가명을 썼다. 이는 연출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고 김 감독은 설명했다.
“처음엔 실명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조금 바꾸니 (연출이) 굉장히 자유로워졌어요. 그 사람이 제 영화에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시대 겪은 제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 저만의 인물을 만든거죠. 마지막에 반란 세력의 기념 사진으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은 그 사진이 승리의 기록이 아닌, 부끄러운 기록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영화는 누구나 결말을 다 아는 역사적인 사건을 그리지만,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실제 군사 반란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역시 김 감독의 연출 의도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관객이 9시간의 소용돌이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너무 드라마틱하거나 다큐가 아닌 그 중간 어디에선가 긴장감을 항상 유지하면서 (사건을) 계속 옆에서 볼 수 있게 하려고 했죠. 소품이나 의상 하나 하나의 분위기도 실재감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김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고서 당시 사건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감독으로서 ‘원대한 희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제 인생의 수수께끼이자 숙제였던 사건을 영화로 풀어서 낸 작품이에요. 절 처음에 이끈 것이 이 사건에 대한 의구심이었듯이 관객 분들도 이 영화를 본 뒤 그런 호기심으로 역사책을 다시 펼쳐봤으면 좋겠습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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