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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대 가부장 세대와 페미니스트의 격론…“이제는 대화하는 사이” [인터뷰]
극단 고래 이해성 대표와 연출가 홍예원
50대 가부장 세대와 페미니스트의 대화
양자역학·페미니즘 병치한 연극 ‘우리’

50대 연출가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대표인 40대 연출가 홍예원이 만나 젠더, 세대, 위계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담은 연극 ‘우리’를 작업했다. 두 사람의 치열한 논쟁은 고스란히 무대에 담겼다.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고승희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태도는 상대가 평가하는 상대의 모습이고, 입장은 그 사람이 세운 입장이죠.” (연극 ‘우리’ 중)

2022년 12월 29일, 젠더(사회적인 의미의 성)와 세대 간의 소통을 주제로 한 연극 ‘우리’의 한 장면. “가부장제나 성폭력에 관습적으로 시달린 40~50대 여성들 중 더이상 남자와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는 페미니스트 여성 연출가(배우 박윤선)의 이야기에 50대 남성 연출가(배우 정나진)는 “소통을 차단하는 그런 태도들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다 제지 당한다. 여성 연출가의 한 마디. “그게 태도일까요? 입장이 아니라?”

논쟁은 치열했고, 때때로 자괴는 깊어갔다. 50대 연출가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대표인 40대 연출가 홍예원의 만남. 연극 ‘우리’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 17개월간 공부하고 토론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만남은 상상 이상의 ‘격론의 장’이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그래도 이젠 대화는 하는 사이가 됐어요.” (홍예원)

한창 연극이 올라가던 중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만난 홍예원 이해성 연출가는 이렇게 말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연극 ‘우리’ [극단 고래 제공]
‘미투’ 이후 연극계 변화…젠더·세대간 소통 필요성 느껴

연극의 시작은 지난해 5월이었다. 이해성 연출가는 홍예원 연출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젠더 갈등과 관련한 연극이 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제가 엄청 웃었어요. 굉장히 힘드실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죠.” (홍예원)

이해성의 결심은 확고했다. 가부장 세대, ‘그래도 제법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살아온 소위 말하는 ‘진보 아재’. 그럼에도 소통의 부재와 갈등은 곳곳에서 체감했고, 자신조차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2018년 ‘미투’ 이후 연극계는 굉장히 큰 변화가 일었다”며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똘똘 뭉쳤던 연극인들 사이에 균열이 많이 생기며 소통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봤다. 비단 연극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대와 젠더, 위계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사회의 문제였다.

“욕을 많이 먹을 수도 있지만, 나한테 그렇게 솔직하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이 홍 연출가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둘 다 이렇게 상처를 받을 줄은 몰랐죠.” (이해성)

2022년 5월, 전화 통화를 한 뒤 7월 7일 연출부의 첫 미팅을 시작했다. 이날부터 올 8월까지 워크숍이 이어졌고, 이후 막을 올리는 11월까지 제작과정을 거쳤다.

연극을 구성한 방식이 흥미롭다. ‘우리’는 젠더 갈등을 다루는 연출부의 워크숍 과정과 극단 상어(극단 고래의 패러디)가 올리는 양자역학 연극의 워크숍 과정을 병치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연극계를 이끌고 있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보니,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대사와 상황은 실제 벌어진 일로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연극은 인물들의 이름과 극단명까지 패러디했다. 두 연출가의 이름을 살짝 틀어 여성 연출가는 이해원, 남성 연출가는 홍예성으로 바꿨다. 극단 고래는 ‘상어’로 설정했다.

이 연극은 가부장적 사고와 언어가 습관화된 50대 연출가의 자성에서 출발한다. 이해성은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성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했다.

50대 연출가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대표인 40대 연출가 홍예원이 만나 젠더, 세대, 위계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담은 연극 ‘우리’를 작업했다. 두 사람의 치열한 논쟁은 고스란히 무대에 담겼다. 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고승희 기자
아슬아슬한 시선…페미니스트는 왜 공격적일까

치열하게 싸워온 ‘시간의 기록’은 뿌리깊은 편견과 선입견, 일반화의 폭력성, 성차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는다. 17개월의 워크숍을 110분 안에 담아낸 연극은 두 사람의 설전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페미니스트인 여성 연출가는 쌓이고 쌓여 폭발한 상태에 다다랐고, ‘대화를 요청한’ 남성 연출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 연출자를 향한 시선이 아슬아슬하다. 작품은 이해성 홍예원이 공동 연출자로 참여했으나, 그간의 대화 과정은 이해성이 대표로 집필했다.

대화에선 두 사람이 인식하는 젠더, 혐오, 대상화 등의 이슈가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이유는 명확하다. 젠더와 세대의 차이이면서, 악의나 고의는 없지만 수천년간 고착화된 사고방식의 산물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차별의 역사’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여성들은 이 땅에서 은연 중에 벌어지는 모든 방식의 차별을 거부한다. 그것은 성별, 젠더, 장애는 물론 종(種)간의 차별까지 확대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 연출가는 종종 ‘지적’하는 사람으로 비치거나, 지나치게 교조적·공격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없다. “양성 평등”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성 평등”이라 바로 잡고,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이라며 일반화하는 표현에 문제를 제기한다.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홍예원은 개막 첫날 작품을 보고 “세 번의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못되게 얘기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스터디를 하는 과정에서 일반화된 언어가 가지는 폭력성에 대해 수차례 이야기를 해왔죠.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연극을 보며) 그간의 나의 노력들은 사라지고 지적질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공격적인 페미니스트의 대표가 된 거죠.” (홍예원)

연극 ‘우리’ [극단 고래 제공]

‘각성’을 위한 17개월의 워크숍 기간은 ‘공부의 시간’이었다. 이 작업을 위해 연출부와 13명의 단원들이 수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각종 강연과 페미니즘 관련 책과 영화를 봤다. 연극엔 단원들의 지인 50명 가량의 인터뷰 중 8명의 이야기를 7개의 영상으로도 담아냈다.

연극은 다소 거칠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냈다. 연극에서 스스로를 “래디컬(급진주의)”이라고 말하는 여성 연출가를 향한 시선은 ‘소통 부재’를 극대화하는 장치이자, 페미니즘의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였다. 연극이 ‘참정권’ 투쟁을 하던 자유주의 페미니즘 시절부터 급진주의와 포스트 페미니즘의 역사까지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위계와 권력이 있는 집단과 계속 해서 소외당한 집단의 분류”를 통해 역사적 맥락을 언급한다.

이해성이 대화를 청했을 당시, 홍예원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대화 없이 각자의 삶을 살면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연극에선 이러한 이야기가 담긴다. “미투 이후 4년이나 흘렀으니 편가르기 하는 듯한 입장을 내려놓자”는 남성 연출가의 이야기에 여성 연출가는 이렇게 말한다.

“소통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한 사람들에게 소통을 하자고 말할 때는 진짜 많은 고민이 필요해요. 말하는 방식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적게는 20년 길게는 40~50년간 억압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살았어요. 이제야 우리의 언어를 찾았고 우리 목소리를 낸지 4년 밖에 안됐어요. 근데 내 얘기를 잘 듣지도 않고 동의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래, 너네를 존중해. 이제 얘기 좀 해보자’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극 ‘우리‘ 중)

연극 속 대사는 온전히 홍예원의 고민하고 싸워온 결과물이었다. 그는 “여성들의 일상이 전쟁인데, 평화를 이야기하자고 하니 난 어디까지 온건해야 하는가 자괴감이 들었다”며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죽었고, 그것이 내가 될 수 있다고 느꼈던 시간들과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때의 공격성과 분노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연극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높였다. 연극을 관람한 50대 중년 남성들의 후기가 인상적이다. 이해성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의 흐름으로 오해받을까 우려도 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왜 그렇게 공격적인지 이해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연극 ‘우리’ [극단 고래 제공]
“양자역학의 새로운 패러다임…페미니즘 메타포 되길”

두 연출가의 논쟁이 연극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극단의 단원들이 준비하는 ‘양자역학 워크숍’이다. 두 논쟁거리를 함께 무대에 올린 것이 흥미롭다. 양자역학과 젠더 논쟁은 탁구 경기처럼 치고 받으며 장면을 전환한다. 이해성의 아이디어로 태어났다.

페미니즘을 양자역학과 묶은 것이 절묘하다. 양자역학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깬 이론이다.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온 양자역학의 철학적, 사유적 시선이 젠더, 성별, 위계를 둘러싼 갈등, 역사와 관습이 쌓아온 지식과 언어를 흔들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홍예원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것은 ‘본다’는 것이다. 관측하는 순간 어떤 관계와 위치가 고정이 된다”며 “관측하고 규정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들이 규정하는 순간 위치가 고정되는데 그것이 언어의 일반화라고 봤다”고 말했다.

사실 양자역학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고전역학’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러온 ‘희대의 명언’도 많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때문에 양자역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고전역학을 뛰어넘는 충분한 사전지식과 공부가 필요하다. 페미니즘과 젠더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알고자 하지 않으면, 지금의 현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이해성이 이 연극을 위해 페미니즘을 다시 공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달라진 세계에서 양자역학과 페미니즘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각성이 바탕한다.

이해성은 “양자역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것처럼 페미니즘이 새로운 시대와 패러다임에 대한 메타포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뜨겁게 싸운 결과는 다소 참담하기까지 했다. 여성 연출가는 결국 떠나버리고, 대화는 그럴 듯한 결말로 봉합되지 않는다. 이러한 마무리는 개막 이후 일부 수정됐다. 두 사람의 전화 통화 내용을 넣어, “대화하는 사이가 됐다는 달라진 현재를 반영”(홍예원)했다. 17개월의 격론 치고는 희망적이다. “이게 화룡정점이 된 것 같아요.” (이해성) 하나를 더했다. 저마다 ‘미움받는다’고 생각했던 두 세대는, 홀로 남은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미워하는가”라는 문장을 통해서다. 연극의 진짜 마지막 장면이다.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지만, 두 사람은 재공연도 고민한다. 홍예원은 “다시는 안 한다”면서도 “재공연을 하면 정말 치열하게, 우리의 싸움에 매몰돼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들여다 볼 것”이라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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