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국장급 공무원 기업 직접 찾아 설득
“정부 지원책 역부족…내년 실적 우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 |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오뚜기에 이어 풀무원이 가격 인상을 철회한 가운데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식품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업이 물가안정에 동참하면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기업 손실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편의점에 보낸 가격 인상 공문을 지난주 철회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풀무원은 12월 1일부터 편의점에서 파는 다논 요거트 가격을 100원 인상된 2300원에 판매하겠다는 공문을 이달 초 편의점에 보냈다. 하지만 21일 철회 공문을 보내 가격 인상을 번복했다.
오뚜기 역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자사 제품 24종의 판매가격을 올리기로 했다가 반나절 만에 철회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기자에게 “작년부터 누적된 원부자재 가격 부담이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내달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카레와 케첩 등 제품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결국 이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민생 안정에 동참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정부의 압박이 가격 인상 철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의 실무자는 27일 오후 언론보도로 오뚜기의 가격 인상 소식을 접한 뒤 실무자와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뚜기의 갑작스러운 인상 철회 결정은 이후에 나왔다.
농림부 관계자는 “관세 인하, 수입 다변화 등 현재 기업의 요청사항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일부 기업은 라면의 원재료인 감자·변성전분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연장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자·변성전분의 수입 가격은 올해 9월 1t(톤)당 1106달러로 평년 대비 40.4%, 전년 동기 대비 30.9% 올랐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실·국장급 정부 관계자들은 식품기업의 임원을 만나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지금까지 농심·삼양·롯데웰푸드·동서식품·CJ제일제당 등을 방문했다. 오리온과 사조신업, 동원, 빙그레 등의 방문도 앞두고 있다.
정부의 노력이 가공식품을 포함한 먹거리 가격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원부자재 가격을 비롯해 유가와 인건비까지 모두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투자 대비 벌이가 줄면서 식품기업들의 4분기 이후 실적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세 인하를 통한 곡물가격 인하는 정책효과가 6개월 뒤에나 나타난다”며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마른 수건을 짜고 있는 꼴‘”이라고 호소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매년 인건비가 3%씩 오르는 등 모든 운영비용은 늘고 있는데 가격 인상을 하지 못하면 이는 결국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간 가격 인상을 자제해 왔지만,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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