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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장 남산시대 50년”…박범훈·국수호·손진책 ‘세 거장’이 다시 뭉쳤다
대형 칸타타 ‘세종의 노래’…300여명 무대에
동서양 악기·소리의 조화…사랑·화합의 장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 대형 칸타타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을 연출하는 박범훈, 안무를 맡은 국수호, 작곡가 박범훈(왼쪽부터)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악관현악의 꽃을 피운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75) 전 중앙대 총장, 국립무용단 1호 남자 무용수 국수호(75), 연극계 거장 손진책(76)…. 국립극장의 ‘남산 시대’를 일군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혈기왕성하던 3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 문화를 꽃 피워온 세 거장의 만남이다.

“손진책, 박범훈, 국수호는 30대에도 친구였고, 지금도 친구예요. 국립극장은 물론 36년간 해마다 작품을 해오며 마당놀이라는 장르는 개척했죠.” (국수호)

안무가 국수호는 지난 28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이하 ‘세종의 노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 사람은 국립극장의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한 기획 공연 ‘세종의 노래’를 통해 초대형 무대를 마련했다.

작품이 담은 의미가 다양하다. 이 공연은 1950년 서울 태평로 시절을 거쳐 대구, 서울 명동 시대를 지나 1973년 10월 현재 위치인 남산 장충동으로 뿌리 내린 국립극장의 50주년을 기념한다.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하는 주역이 바로 국립극장의 토대와 기틀을 세웠고,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세 거장 박범훈, 손진책, 국수호다.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올해는 국립극장이 창작예술 거점으로 탄생한 지 50년이 되는 해”라며 “국립극장의 모태부터 활동한 박범훈, 국수호, 손진책 등 세 분을 통해 국립극장이 성장했다. 그동안 쌓아온 창작 역량을 모두 보여드릴 만한 공연이자 전 장르를 망라하는 공연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인건 국립극장장과 박범훈 지휘자, 국수호 안무가. [연합]

세 거장과 국립극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박범훈이 26세 때 국립극장 남산 개관기념 작품 중 하나인 ‘별의 전설’을 작곡했다. 이 작품의 주역 무용수이자 유일한 남자 무용수가 바로 국수호. 두 사람은 이후 각각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무용단의 단장을 지냈다. 손진책 연출가는 국립극장 남산 개관작인 ‘성웅 이순신’의 조연출로 참여했다.

국수호는 “국립극장은 나를 키워준 어머니”라며 “5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에서 이런 대작 안무를 맡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함께 한 ‘세종의 노래’는 국악관현악, 서양 오케스트라, 판소리, 합창, 무용 등이 한데 어우러진 대작이다.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과 민간 단체인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총 313명이 무대에 오른다.

‘세종의 노래’는 576년 전 세종이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한다. 세종이 먼저 세상을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위해 지은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은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이 공연에선 불교적 색채를 중화하고, 사랑과 화합의 의미를 담아 무대에 올린다.

박범훈은 “코로나19가 심했던 2년 전 박해진 시인과 인연이 닿아 ‘월인천강지곡’을 해석한 노랫말에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며 “제가 쓴 곡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고민한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1세기의 ‘월인천강지곡’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우리 소리를 엮었다”며 “‘월인천강지곡’이 백성을 위해 쓴 곡이라는 역사성도 생각해서 쉽게 이해되고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곡은 여러 악장의 성악곡으로 구성된 칸타타 형식으로 쓰였다. 서사를 구성한 가사를 바탕으로 무용과 연출을 더했다. 박범훈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친구들(손진책, 국수호)에게 도움을 청해, 볼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대 중앙에 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악기 연주자 97명이 원형으로 자리를 잡고, 뒤쪽 양 끝에 합창단 174명이 앉아 무대를 가득 채운다. 박범훈은 “국악관현악이 중심이 되지만, 긴 시간 다양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려면 부족한 부분이 있어 서양 악기 연주자를 35명 정도 넣었다”며 “서양 악기가 돋보이기보다는 국악관현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 대형 칸타타 ‘세종의 노래:월인천강지곡’을 작곡한 박범훈(왼쪽), 국립창극단 단원 이소연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

여기에 국립창극단 단원이 총출동, 동·서양 소리의 화합을 연출한다. 11명의 창극단 단원들이 우리 소리로 솔로곡을 부르고, 4성부의 벨칸토 창법으로 합창단이 이들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독창, 중창, 합창이 동서양을 넘나들며 어우러진다. 무용수 31명은 악기 연주자들을 둘러싼 원형 무대에 등장해 이야기를 몸짓으로 풀어낸다.

국수호는 이 작품에 대해 “세종이 소헌왕후에게 보내는 시이지만, 결국은 인내천(人乃天) 정신으로 백성에게 다가가려는 사랑이 담겨있다”며 “움직임도 사랑과 부딪힘, 그러면서 화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독감으로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손진책은 “조선 최고의 커플인 세종과 소헌왕후의 이야기”라며 “600년 전 노래를 이 시대 관객에게 와닿을 수 있도록 신선하게 연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세종의 노래’는 하루 아침에 태어난 작품이 아니다. 박범훈은 숱한 가사 수정과 편곡 작업을 거듭했고, 손진책은 박해진 시인의 노랫말과 세종이 쓴 ‘월인천강지곡’을 대조하는 등 3개월 간 사전 스터디 기간을 가졌다. 국수호는 “이 작품을 하면서 다들 병이 났다”며 “우리의 고향 같은 국립극장의 50년을 뜻깊게 각인하고자 하는 결의가 있어 다들 헌신적으로 임했다. ‘세종의 노래’는 우리 세 사람에게 결산의 의미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공연은 다음 달 29일부터 31일까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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