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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떠난 엄마가 돌아왔다”…30여년의 오해, 사흘 만에 풀수 있을까
천국서 휴가 받은 엄마…‘3일간의 휴가’
모녀 간 애증·후회 다뤄 공감대
[쇼박스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따님은 어머님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요. 어머님은 따님을 만져서도 안됩니다.”

3년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복자(김해숙 분)는 천국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4등을 한 기념으로 3일 간의 휴가를 얻는다. 보고 싶은 사람 곁으로 잠시 갈 수 있는 것. 그러나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만질 수는 없다.

복자는 미국 명문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외동딸 진주(신민아 분)를 보러 갈 생각에 신이 났지만, 정작 천국의 가이드는 그를 시골의 백반집으로 데려간다. 백반집은 복자가 생전에 운영했던 식당. 알고 보니 진주가 미국 생활을 잠시 접고 복자를 대신해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애써 유학 보낸 딸이 시골 구석 백반집에서 부엌일을 하고 있다니…. 복자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쇼박스 제공]

영화 ‘3일의 휴가’는 하늘에서 휴가 온 엄마와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이 뒤늦게서야 서로를 이해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방가? 방가!’ 등을 연출한 육상효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의 중심엔 모녀 간의 애증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에 대한 딸의 애증이다.

진주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오래 전 외삼촌네에 ‘딸을 버린 존재’다. 엄마는 재혼 가정에서 재혼 남편과 피 안 섞인 두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살았다. 진주가 서울에서 공부할 때도 엄마의 연락은 거의 받지 않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엄마는 더욱 원망스러운 존재가 됐다. 때문에 진주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진주는 백반집에서 평범히 지내다가도 한밤에 자다가 뛰쳐나와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며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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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복자의 기억은 다르다. 딸은 복자에게 삶의 전부였다. 복자는 자식이 공부를 잘해야만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홀로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딸을 남동생네에 맡겼다. 그리곤 주기적으로 딸을 찾아갔다. 재혼한 이유도 딸 때문이었다. 재혼 남편이 진주의 모든 학비를 대주겠다는 말에 솔깃했던 것. 정작 그의 재혼 생활은 식모살이에 그쳤다.

홀로 시골에 내려와 백반집을 운영할 때도 복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딸 생각만 했다. 진주가 복자의 전화를 거의 받지 않은 탓에 복자는 거의 진주의 통화연결음 노래만 듣다시피 하며 살았다.

모녀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기억을 각자 더듬으며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복자는 3일 간 딸을 지켜보며 딸을 이해하고, 진주는 백반집을 운영하고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며 엄마를 더 알아간다.

[쇼박스 제공]

육 감독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며 “부모는 절대로 자식을 배신하지 않고, 자식이 이를 몰랐다가 나중에 오해를 깨닫는 과정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해숙은 “나 역시 진주였고, 내 딸도 진주다. 모든 자식들과 부모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며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 엄마께 못해드렸다. (살아)계실 때 해드렸으면 좋았을 걸 (후회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돼 나오는데, 백반집의 음식이나 시골 풍경 등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로 영리하게 쓰인다. 특히 스팸 김치찌개, 잔치 국수, 무우를 넣어 빚은 만두 등 맛깔나게 담은 시골 밥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육 감독은 “기억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음식, 음악, 풍경, 영상 등에 중점을 둔 이유”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모녀 관계라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신파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영화 전개 내내 눈물을 자극하진 않는다. 오히려 천국 가이드(강기영)나 진주의 단짝 미진(황보라)의 감초 역할 덕분에 영화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있다. 웃음과 눈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연출력이 돋보인다.

12월 6일 개봉. 105분. 12세 이상 관람가.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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