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식에서 회향사하는 자승 스님 [연합] |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같은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언론 보도에서도 '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할 정도인데, 불교계 '큰스님'의 극단 선택을 '소신공양'이나 '입적'이란 말로 치장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지적이다.
29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 내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장소)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자승 스님은 이곳에서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 |
조계종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화재로 숨진 채 발견된 자승 스님의 거처에서 유언서로 추정되는 자필 문서가 여러 장 발견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자승스님이 “정토 극락 니르바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항상 추구하셨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스스로 맞이하셨다고 생각한다”고 유서를 통해 짐작되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그는 “당신(자승스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정법 포교에 임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불교의 근본 목적인 해탈, 열반, 성불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서 항상 그 경계선상에서 계셨던 것 같다”며 자승스님의 선택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자승 스님이 직접 운전한 차량 안에서 발견된 유서 형식의 메모 2장. 메모 한 장에는 칠장사 주지 스님에게 남긴 글과 서명이 있다(왼쪽 사진). 다른 한 장에는 역시 서명과 함께 ‘경찰분들께.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
진우스님 이어 "지금까지 나온 여러 정황상 제가 볼 때는 상당한 기간 생각을 하셨던 것 같고, 다만 그 시기가 이때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반인은 잘 이해를 잘 못하시겠지만 수행자 사이에서는 충분히 있는 일"이라며 "또 불교에서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다달아 또 한걸음 더 나아간다), 방하착(放下着·내려놓으라는 뜻의 불교 용어) 이라는 화두가 있다"고 소개했다.
진우스님은 또 "상대적인 세계에서 벗어난 절대 피안의 세계로 깨달음의 성취를 하신 것 같다. 그 이상 그 이하, 덧붙이거나 왈가왈부할 문제가 이제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자승스님 분향소를 찾은 스님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 |
추가 유서의 발견으로 '타살 의혹'은 다소 가라앉은 상태지만, 자승 스님의 극단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헤럴드경제의 자승 스님 관련 기사들에 대한 누리꾼의 댓글 중에는 "자살을 '입적'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말라", "절간에 방화까지 해서 자살하는 건 범죄다" 등의 반응이 많았다.
실제 스님의 극단선택을 소신공양으로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불교는 불살생(생명을 죽여서는 안된다)을 핵심 교리로 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것 역시 금지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다만 고차원적인 종교적, 사회적 가치를 이루기 위해 극단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가령 정원 스님은 2017년 1월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며 소신공양을 한 바 있으며, 문수 수님은 2010년 4대강 사업 중단을 기원하며 소신공양했다. 베트남 전쟁 때 소신공양한 일도 유명하고, 최근 티베트 억압에 저항해 잇따라 소신공양하는 등 해외에도 사례가 있다.
2017년 한 토론회에서 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소신공양은 도피적인 자기파괴가 아니라 적극적 자기실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생산적 삶"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자살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진 분신은 일반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어떠한 주장을 강하게 표출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시위나 집회에서 종종 나오는 이유다. 불자가 나름의 가치를 추구하듯, 일반인도 나름의 가치를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가치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극단선택이라는 수단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잡아 있다. 이에 일반인의 경우 유서 전문을 언론에서 보도할 경우 제재를 받기도 한다.
만약 조계종에서 자승 스님과 같은 극단선택에 대해 '소신공양'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수행자 사이에서는 충분히 있는 일", "절대 피안의 세계로 깨달음의 성취를 한것"이라고 치장한다면, 일반인의 극단선택을 조장하는 셈이 된다는 지적이다.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일반인에게 전파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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